군왕선[郡王宣]~군왕침과[君王枕戈]~군왕후[君王后]

군왕[群枉]  여러 간신(奸臣)이란 뜻이다.

군왕선[郡王宣]  세습천호선(世襲千户宣). 선(宣)은 제왕의 조서(詔書)로, 명령(命令)이나 지의(旨意)를 지칭하는데, 이는 군왕(郡王)을 봉하고 세습의 천호(千戶)를 봉하는 공명첩(空名帖)을 가리킨다.

군왕여제좌법궁[君王如帝坐法宮]  법궁(法宮)은 노침(路寢)의 정전(正殿)을 가리키는 바, 곧 황제(皇帝)가 구중궁궐의 깊은 곳에 있어 하늘의 옥황상제(玉皇上帝)처럼 위엄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 여산(驪山)에 “궁궐문 하늘처럼 몇 겹이나 깊은데 군왕(君王)은 천제(天帝)처럼 법궁(法宮)에 앉아 계시네. 인생(人生)이 대처하기 어려운 것 안온한 생활이니 어찌하여 이 여산(驪山) 가운데로 왔는가.[君門如天深幾重 君王如帝坐法宮 人生難處是安穩 何爲來此驪山中]”라고 하였다.

군왕옹수황금대[君王擁篲黃金臺]  중국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인재를 찾는 방법을 곽외(郭隗)에게 물으니 곽외가 “옛날 어떤 임금이 천리마를 구해 오라고 하면서 천금(千金)을 주어서 사람을 보냈더니, 천리마는 구하지 못하고 죽은 천리마를 500금에 사 왔습니다. 왕이 꾸짖으니, 그가 말하기를 이 소문이 퍼지면 살아 있는 천리마를 몰고 찾아올 사람이 많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뒤에 과연 천리마가 세 필이나 왔습니다. 왕께서 인재를 구하시려면 신을 먼저 후하게 대접하소서.” 하였다. 소왕은 곽외를 위하여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이에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왔고 추연(鄒衍)이 제(齊)나라에서 왔고 극신(劇辛)이 조(趙)나라에서 왔다. 이 내용은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1에 실려 있다. 추연이 연나라에 갈 때에 소왕이 빗자루를 들고 앞장을 섰고 제자의 자리에 앉아서 추연에게 수업을 들었으며 갈석궁(碣石宮)을 짓고 몸소 가서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이 내용은 사기(史記) 권74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실려 있다.

군왕침과[君王枕戈]  예기(禮記)에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은 거적자리에서 창을 베고 잠을 잔다.”는 말이 있는데,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항복하여 굴욕(屈辱)을 당한 뒤에 나라에 돌아와서 범려(范蠡)・대부종(大夫種)과 함께 국력(國力)를 길러서 도리어 오나라를 멸하고 패업(覇業)을 성취하였다.

군왕후[君王后]  태사교(太史敫)의 딸로, 제(齊)나라 양왕(襄王)의 후비(后妃)이며, 제(齊)나라 왕 전건(田建)의 생모이다. 제(齊)나라 태사(太史) 교(敫)의 딸인 그녀는 양왕(襄王)이 죽고 아들 건(建)이 제왕(齊王)이 되었을 때에 진(秦)나라를 근실(謹實)히 섬기고 제후(諸侯)들과 신의를 유지하였다. 그 때문에 건(建)이 제왕(齊王)으로 있는 40여 년 동안은 제후(諸侯)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사기(史記) 전경중세가(田敬仲世家)에 “혼왕(湣王)의 아들 법장(法章)이 변성명(變姓名)하고 거(莒) 태사(太史) 교(敫)의 집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교(敫)의 딸이 법장(法章)의 용모가 비상한 것을 보고 항상 의복과 음식을 몰래 공급하고 그와 사통(私通)하였다. 거(莒) 사람들이 함께 법장(法章)을 왕으로 세웠으니 이가 바로 양왕(襄王)이고, 태사씨(太史氏)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았으니, 이가 바로 군왕후(君王后)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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