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곡[郤縠] 극곡은 춘추(春秋) 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의 사람으로 무인(武人)이면서도 시서(詩書)에 밝고 예악(禮樂)을 중시하였다. 진 문공(晉文公)이 사냥을 나가면서 삼군(三軍)을 편성하고 원수(元帥)가 될 만한 인물을 물색하자 조최(趙衰)가 아뢰기를 “극곡이 예악(禮樂)을 말할 줄 알고[說禮樂], 시서(詩書)에 독실하니[敦詩書] 그가 틀림없이 군대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문공이 그를 시켜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39> <春秋左氏傳 僖公27年> <尙友錄 卷22>
극곡[郤縠]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장(大將) 극곡(郤縠)을 가리키는데, 보통 유장(儒將)의 대명사로 쓰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7년 조에 따르면 진 문공(晉文公) 4년에 군대를 피려(被廬)에 집결시켜 삼군(三軍)을 편성하고 나서 원수(元帥)를 뽑을 적에, 시(詩)・서(書)・예(禮)・악(樂)에 능하다는 조최(趙衰)의 천거에 따라 그를 중군(中軍)의 대장에 임명하였다고 한다.
극곡[郤縠] 춘추 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의 장수이다. 진나라가 피려(被廬)에서 사냥을 하면서 군대를 개편한 다음 중군의 원수를 물색하였는데 조최(趙衰)가 말하기를 “극곡이 적임자입니다. 신이 평소에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예악을 말하고 또 시서에 돈독하니, 군주께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郤縠可. 臣亟聞其言矣, 說禮樂而敦詩書, 君其試之.]”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27年>
극곡돈서[郤縠敦書] 극곡(郤縠)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장수인데, 서경(書經)을 비롯하여 시경(詩經)과 예기(禮記) 등에 모두 정통하였다. 문심조룡(文心雕龍) 정기(程器)에 “극곡이 시서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등용되어 장수가 되었으니, 어찌 문을 좋아한다고 무를 연마하지 않았겠는가? 손무가 병법을 지을 때 문장이 주옥같았으니, 어찌 무만 익히고 문을 몰랐겠는가.[卻縠敦書 故擧爲元帥 豈以好文而不練武哉 孫武兵經 辭如珠玉 豈以習武而不曉文也]” 하였다.
극곡돈시[郤縠敦詩] 극곡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이다. 진 문공(晉文公)이 장수 중에 원수(元帥)가 될 만한 인물을 물색하니, 조최(趙衰)가 말하기를 “극곡이 좋습니다. 신이 그의 말을 들어 보니 예악을 얘기하고 시서에 독실하였습니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27年> 후에 무장이면서도 경서에 밝아 문무를 겸비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극곡돈시서[郤縠敦詩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7년 조에 “진 문공(晉文公)이 삼군(三軍)을 창설해 놓고 대장을 물색하니, 조최(趙衰)가 말하기를 ‘극곡이 적임자입니다. 신은 자주 들어 보았는데, 그는 예악(禮樂)을 좋아하고 시서(詩書)에 깊다고 하니, 주군께서는 시험해 보소서.’라고 하니, 그로 하여금 중군(中軍)을 맡도록 하고 극진(郤溱)으로 하여금 보좌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후세에 이를 유장(儒將)의 비유로 사용하였다.
극곡수사[郤穀帥師]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이다. 진나라가 피려(被廬)에서 사냥을 하면서 군대를 개편한 다음 중군의 원수를 물색하니, 조최(趙衰)가 말하기를 “극곡이 적임자입니다. 제가 평소에 그의 말을 들어 보면 그가 예악을 좋아하고 또 시서를 열람하기 좋아하니, 시험해 보소서.[郤縠可 臣亟聞其言矣 說禮樂而敦詩書 君其試之]”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27年>
극곡시서[卻縠詩書] 극곡은 문무(文武)를 모두 겸비한 유장(儒將)의 대명사이다. 극곡은 춘추(春秋)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무인(武人)이면서도 시서(에 밝고 예악(禮樂)을 중시하였다. 한 번은 진 문공(晉文公)이 사냥을 나가면서 삼군(三軍)을 편성하고 원수(元帥)가 될 만한 인물을 묻자 조최(趙衰)가 극곡을 추천하기를 “극곡이 원수로 적합합니다. 신이 자주 그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예악을 좋아하고 시서를 숭상하였습니다.[郤縠可 臣亟聞其言矣 說禮樂而敦詩書]”라고 하였다. 이로써 극곡은 중군 장군(中軍將軍)에 임명되었다. <史記 卷39> <春秋左氏傳 僖公27年>
극곡열예악[卻縠說禮樂] 극곡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이다. 진 문공(晉文公)이 사냥을 나가면서 삼군(三軍)을 편성하고 원수(元帥)가 될 만한 인물을 물색하자 조최(趙衰)가 말하기를 “극곡이 원수로 적합합니다. 신이 그가 하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극곡은 예악(禮樂)을 말할 줄 알고, 시서(詩書)에 독실합니다.[郤縠可 臣亟聞其言矣 說禮樂而敦詩書]”라고 하여, 문공은 그를 시켜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27年> 예악을 좋아하고 시서를 숭상한다는 것은 흔히 유장(儒將)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극곡지풍[郤縠之風] 극곡(郤縠)의 풍도. 춘추 시대 진(晉) 나라 사람으로, 중군(中軍)을 거느린 장수인데, 그는 무예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에도 밝아 문무를 겸비했다 한다. <春秋左傳 僖公27年>
극곤[殛鯀] 殛(극)은 誅(주목: 을 베는 것)이고, 鯀(곤)은 우임금의 아버지이다.
극괴[棘槐] 삼괴구극(三槐九棘)의 준말로, 공경(公卿)을 가리킨다. <申鑑 政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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