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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金陵]~금릉왕기[金陵王氣]~금릉지조저[金陵之釣渚]


금릉[金陵]  금릉(金陵)은 현재의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이다. 육조(六朝) 시대에는 건강(建康)이라 하였고, 대대로 남조(南朝)의 수도였다.

금릉[金陵]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으로,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맨 처음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땅에 왕기(王氣)가 있으므로 금(金)을 묻어서 그곳을 진압했기 때문에 금릉이라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진(晉)・송(宋)・제(齊)・양(梁)・진(陳)이 도읍했던 곳이다.

금릉[金陵]  중국 4대 고도(古都)의 하나인 남경(南京)의 아명(雅名)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뒤부터 강남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진(晉)나라 때에는 건강(建康)으로 개칭하였고, 이후 남왕조의 국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사조(謝眺)의 고취곡(鼓吹曲)에 “강남에 아름다운 땅이 있으니, 금릉이 바로 제왕의 고을이다.[江南佳麗地 金陵帝王州]”라고 하였고, 이백(李白) 시 금릉가송별범선(金陵歌送別范宣)에 “그 옛날 금릉성 얼마나 웅장했던가,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이곳 차지했네.[金陵昔時何壯哉 席卷英豪天下來]”라고 하였다. 명(明) 태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하였다.

금릉[金陵]  황해도 금천(金川)을 말한다.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는 첫 경유지이다.

금릉도[金陵渡]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장강변(長江邊)에 위치한 나루로 과주(瓜州)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당대(唐代)에는 이를 ‘윤주(潤州)’(鎭江) 또는 금릉(金陵)이라 했으므로 ‘금릉도’라 칭한 것이다.

금릉성[金陵城]  지금의 남경(南京)이다.

금릉왕기[金陵王氣]  금릉에 도읍했던 오(吳), 동진(東晉), 남조(南朝)의 송(宋)・제(齊)・양(梁)・진(陳)을 가리킨다. 금릉은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금을 묻어 왕기(王氣)를 눌렀던 데서 나온 이름인데, 뒤에 이 여섯 왕조가 이곳에 도읍하였기 때문에 제왕이 소재한 금릉의 상서로운 기운을 ‘금릉왕기(金陵王氣)’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금릉이후복견주[金陵以後服見誅]  송 태조(宋太祖) 개보(開寶) 7년(974)에 남당(南唐)의 후주(後主)인 이욱(李煜)에게 입조(入朝)할 것을 고유하였는데 이욱(李煜)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대장(大將) 조빈(曹彬)과 반미(潘美) 등을 보내 남당(南唐)을 공격하게 하였다. 다음 해 봄에 송(宋)나라 병사가 금릉(金陵)을 포위하였고, 그해 11월에 금릉(金陵)을 함락시키고 이욱(李煜)을 사로잡아 변경(汴京)으로 보냈다. 후에 이욱(李煜)은 태종(太宗)이 보낸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사망하였다.

금릉지조저[金陵之釣渚]  엄주속고(弇州續稿) 유금릉제원기(遊金陵諸園記)에 “배에다 술을 싣고 왼쪽 계곡을 통하여 횡당(橫塘)에 도달하였는데, 공원이 거의 반 리나 뻗어 있어 때때로 좋은 수목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선배들이 말하기를 ‘무종(武宗)이 금릉에 순시하러 오면 여기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해가 지도록 돌아가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바로 이 정자이다.”라고 하였다.

금릉현[金陵縣]  경상북도 김천의 옛 이름이다.

금릉현[金陵縣]  전라남도 강진의 옛 별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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