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문[金馬門] 금마문은 한(漢)나라 궁궐의 문으로, 동방삭(東方朔) 주보언(主父偃) 엄안(嚴安) 등 문인들이 황제의 조서(詔書)를 기다리던 곳인데 뒤에는 조정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금마문[金馬門] 문명(門名). 한대(漢代)의 미앙궁(未央宮)에 있던 문으로 문학사(文學士)들이 출사하던 곳인데, 문 앞에 동제(銅製)의 말이 있으므로 이른 말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이 문에다 여러 학자들을 배치시켜, 조서를 기다려서 고문에 대비하게 하였다.
금마문[金馬門] 한 무제(漢武帝)가 대완(大宛)의 말을 얻고 그 기념으로 동상을 만들어 노반문(魯班門) 밖에 세우고 그 문을 금마문이라 불렀다. 당시에 문학(文學) 하는 선비들이 여기서 황제의 조서(詔書)를 기다렸기에 후에는 문사들이 출사(出仕)하던 관서(官署)를 가리킨다.
금마문[金馬門] 한(漢)나라 시대의 궁전 문 이름으로, 학사들이 조칙(詔勅)을 기다리는 곳이다. 금마문(金馬門)은 문 곁에 동마(銅馬)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한 무제(漢武帝)가 대원(大宛)의 명마(名馬)를 얻고서 구리로 말의 동상(銅像)을 만들어 세웠다.
금마문대조[金馬門待詔] 공손홍(公孫弘)은 한 무제 즉위 초에 예순의 나이로 현량문학(賢良文學)으로 등용되어 재상에까지 올랐다. 전한서(前漢書)에는 ‘태상(太常)에서 공손홍의 대책문을 하등으로 평가하여 올리자 무제가 제일등으로 뽑았고, 공손홍을 만나보고 그의 용모가 미려하므로 박사로 삼아 금마문(金馬門)에서 대조(待詔)케 하였다.’라고 하였다. <前漢書 卷58 公孫弘> 금마문에서 대조하는 것은 한나라 제도에서 징사(徵士) 중에 우수한 사람은 금마문에서 대조하면서 고문(顧問)에 응하도록 한 것을 가리킨다.
금마방삭[金馬方朔] 금마는 금마문(金馬門)으로 한(漢)나라 시대 궁궐 문의 이름인데, 학사(學士)들이 조서(詔書)의 하달을 기다리던 곳이다. 방삭(方朔)은 한나라 동방삭(東方朔)인데, 자는 만청(曼倩)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대조금마문(待詔金馬門)으로 벼슬이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르렀다. 그가 지은 거지가(據地歌)에 “세속에 빠져 금마문에서 세상을 피하였네.[陸沈於俗 避世金馬門]”라고 하였다.
금마벽계[金馬碧鷄] 금마(金馬)와 벽계(碧鷄)는 후대에 상서로운 물건으로 알려졌다.
금마벽계[金馬碧鷄] 두 신(神)의 이름인데, 지금은 이 두 신이 살았다는 산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촉 땅 익주(益州)에 금마(金馬)와 벽계(碧溪)의 신(神)이 있는데, 제사를 지내 그들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방사(方士)의 말을 듣고, 한 선제(漢宣帝)가 간의대부(諫議大夫) 왕포(王褒)를 그곳에 사신으로 보낸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下 王褒傳, 卷25下 郊祀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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