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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일식[錦衣一食]~금의환향[金衣還鄕]~금익사[金翼使]


금의일식[錦衣一食]  비단옷과 먹을 것을 바꾼다는 뜻으로 호화(豪華)로운 비단(緋緞)옷보다 한 그릇의 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금의주행[錦衣晝行]  비단옷을 입고 낮에 길을 간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벼슬을 하거나 크게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금의환향[金衣還鄕]  금의환향은 낮에 비단옷을 입고 고향마을에 돌아다닌다는 말로, 의금주행(衣錦晝行)이라고도 한다. 출세하여 고향사람들에게 그 영광스러움을 보인다는 뜻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궁실이 모두 불타서 잿더미로 변한 것을 보고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부귀한 신분이 되었는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는 비단옷을 몸에 걸치고서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라고 말한 고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史記 卷7 項羽本紀> 또 송나라의 명신(名臣) 한기(韓琦)가 일찍이 재상으로 무강군 절도사(武康軍節度使)가 되어 자기 고향인 상주(相州)를 다스리면서 그곳에 주금당(晝錦堂)을 세우고 또 시를 지었는데, 구양수가 그 시에 의거해서 상주주금당기(相州晝錦堂記)라는 기문을 지어 한기의 뜻을 칭송한 고사도 있다.

금이[金夷]  금인(金人)인 오랑캐라는 뜻으로, 불교의 부처를 말한다.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꿈속에서 체격이 크고 정수리에서 광명을 발하는 ‘황금색 사람[金人]’을 보고는 신하들에게 물었는데, 불(佛)이라고 하는 서방의 귀신으로 키가 1장(丈) 6척(尺)에 황금색이라고 대답하자, 천축(天竺)에 사신을 보내 불법(佛法)을 구했으므로 마침내 중국에 불교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後漢書 卷88 西域列傳 天竺>

금이식채위류성[禽以食采爲柳姓]  유종원(柳宗元)의 고숙부전중시어사부군묘판(故叔父殿中侍御史府君墓版)에 “유씨(柳氏)의 윗대 조상은 황제(黃帝)에서부터 주(周)・노(魯)까지 이어져온다. 세상에 드러난 사람으로는 무해(無駭)가 있는데 그가 조부의 자(字)를 취해 전씨(展氏)라 했고, 금(禽)은 식읍(食邑)의 명칭을 취해 유씨(柳氏)라고 했다. 그 뒤에 자손이 번성해져 대대로 하동(河東)에 터를 잡았다.[柳氏之先 自黃帝及周魯 其著者無駭 以字爲展氏 禽以食采爲柳姓 厥後昌大 世家河東]”라고 한 데서 보인다. 금(禽)은 전금(展禽)으로, 전무해(展無駭)의 아들이다. 노(魯)나라의 어진 대부로 사사(士師)가 되어 형옥(刑獄)을 관장하였으며, 바른 도리로 군주를 섬기고 모든 사람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큰 버드나무 밑에 식읍(食邑)이 있었고 그의 시호가 혜(惠)였다고 하여 유하혜(柳下惠)라 부르며, 그의 후손들이 유(柳)를 성씨로 삼았다.

금이이정학양신[琴以怡情鶴養神]  송 나라 조변(趙抃)이 철면어사(鐵面御史)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촉 나라를 다스리게 되자 거문고 하나 학 한 마리만을 가지고 갔다 한다. 지금 청렴한 관리를 말할 때는 늘 금학을 쓰고 있다.

금익사[金翼使]  벌의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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