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錦字] 비단에 수놓은 글자로, 본디 진(晉) 나라 때 두도(竇滔)의 처(妻)로 여류 문인(女流文人)이었던 소혜(蘇蕙)가 남편 두도(竇滔)가 진주 자사(秦州刺史)가 되어 멀리 유사(流沙) 지방으로 가게 되자, 사모한 나머지, 오색(五色)실로 비단을 짜서 회문선도시(廻文旋圖詩)를 만들어 두도에게 부쳤던 데서 온 말인데, 회문선도시란 바로 내리읽으나, 올려 읽으나 전후좌우 어느 쪽에서 읽어도 다 문장이 되게 지은 시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아내가 낭군에게 사모하는 정을 표하는 서신, 또는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가리킨다. <晉書 卷96 竇滔妻蘇氏列傳>
금자[錦字] 전진(前秦) 때에 두도(竇滔)가 양양(襄陽)을 진수(鎭守)하게 되었는데, 사랑하는 딴 여자를 데리고 임지(任地)로 가서, 본처인 소씨(蘇氏)에게는 음신(音信)을 끊으니 소씨가 한탄하고 슬퍼하여 비단을 짜는데 글짜를 새겨 넣어서 시(詩) 2백여 수를 짜서 보내니 도(滔)가 그 비단의 글자[錦子]를 보고 그 절묘(絶妙)함에 감심(感心)하여 수레를 보내어 소씨를 데려갔다고 하는 고사가 있다.
금자[禽子] 전국 시대 묵자(墨子)의 제자인 금활리(禽滑釐)를 가리킨다. 활리(滑釐)를 활리(滑痢)의 뜻으로 전용하여 설사가 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금자[今者] 지금. 지금에 있어서.
금자[金紫] 금어대(金魚袋)와 자의(紫衣)를 말한다.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때의 관복(官服)과 패식(佩飾)인데, 이를 귀관(貴官)의 대칭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신당서(新唐書) 거복지(車服志)에 “이로부터 백관(百官)들에게 비(緋)・자(紫)를 상으로 내릴 때 반드시 어대(魚袋)를 겸하게 하니 이를 장복(章服)이라고 하였다. 당시에 주자(朱紫)를 입고 어대를 허리에 찬 관원이 많았다.”라고 하였는데 송(宋)대에 이를 습용(襲用)하였다. 당나라 원진(元稹)의 증태보엄공행장(贈太保嚴公行狀)에 “50년 동안 벼슬한 사이에 상서(尙書) 한 번과 복야(僕射) 세 번을 거치고, 여섯 번 대부(大夫)를 겸하고, 다섯 번 사공(司空)을 맡고, 두 번 사도(司徒)를 하고, 세 번 보부(保傅)를 하였는데, 품계는 높은 금자(金紫)에 이르고, 관작은 최고의 국공(國公)에 다다랐다.”라고 하였다.
금자[金紫] 금인(金印)과 자수(紫綬). 금인자수(金印紫綬)의 준말로,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는 금으로 만든 인장(印章)과 붉은색의 인끈이다. 한(漢)나라 때 승상(丞相)과 태위(太尉) 등이 모두 황금(黃金) 인장(印章)에 자색(紫色) 수대(綬帶)를 띠었던 데서 온 말이다.
금자객[金紫客] 금인자수(金印紫綬)를 찬 사람이란 말로 고관대작을 가리킨다. 금인(金印)과 자수(紫綬)는 고관(高官)의 의장(儀章)인데, 전하여 품계가 높은 벼슬을 말하기도 한다. 한(漢)나라 때에 승상(丞相)과 태위(太尉) 등이 모두 자색(紫色) 조복을 입고 금으로 만든 인(印)을 비단 끈에 달았던 일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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