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중[禁中] 궁중(宮中)을 칭한다. 특별히 허락받은 신하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므로 금중(禁中)이라 한 것이다.
금중대화 연량궁[禁中大火 延兩宮] 구양수(歐陽脩) 진안군절도사 동중서문하평장사 증중서령 시문간 정공 묘지명(鎭安軍節度使同中書門下平章事贈中書令諡文簡程公墓誌銘)에 “대궐에 큰 화재가 나서 양궁(兩宮)에 옮겨 붙었다. 환관이 옥사를 다스려 봉인(縫人)의 다리미로 불이 났다는 사실을 밝히고서 이미 거짓으로 자복시켜 개봉부에 보내졌다.[禁中大火 延兩宮 宦者治獄 得縫人火斗 已誣伏而下府]”라고 한 데서 보인다. 송사(宋史) 인종기(仁宗紀) 2에 “명도(明道) 원년(1032) 8월 임술일에 대내(大內)에 화재가 나서 팔전(八殿)에 옮겨 붙었다.”라고 하였고, 지리지(地理志) 1에는 “명도 원년 8월에 문덕전(文德殿)을 수리하여 완성하였다. 이날 밤에 금중(禁中)에 불이 나서 숭덕전(崇德殿), 장춘전(長春殿), 자복전(滋福殿), 회경전(會慶殿), 연경전(延慶殿), 숭휘전(崇徽殿), 천화전(天和殿), 승명전(承明殿) 여덟 곳에 옮겨 붙었다.”라고 하였다.
금중독직[禁中獨直] 금중(禁中)은 궁중(宮中)을 이르고, 독직(獨直)은 혼자 숙직하는 것이다.
금중일악[禽中一鶚] 명현씨족언행유고(名賢氏族言行類稿) 권34에 “후한(後漢)의 예형(禰衡)이 기개가 강직하여 세상을 경시하였다. 일찍이 자신의 소개서를 품에 넣고 글자가 모두 문드러지도록 갈 데가 없었다. 어느 날 공융(孔融)을 찾아가니, 공융이 조정에 추천하기를 ‘비록 수백 마리의 맹금(猛禽)이 있더라도 물수리 한 마리만 못할 것입니다. 예형으로 하여금 조정에 나와 벼슬하도록 하면 필시 볼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鷙鳥累百, 不如一鶚. 使衡立朝, 必有可觀.]’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금중파[禁中頗] 궁정 안에서 시종하는 사람으로서 문무의 재주를 겸비한 자를 말한다. 금중은 대궐 안을 말하고, 파목(頗牧)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뛰어난 명장(名將)인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말한다. 당(唐)나라 선종(宣宗) 때 당항(黨項)이 하서(河西) 지방을 어지럽히자 한림학사(翰林學士) 필함(畢諴)이 이들을 격파하는 계책을 조목조목 진달하였는데, 황제가 몹시 기뻐하여 말하기를 “내가 장차 장수가 될 만한 사람을 뽑을 것인데, 염파와 이목이 나의 금서(禁署) 안에 있다. 경은 짐을 위해서 나가라.”라고 하고는, 필함을 빈녕 절도사(邠寧節度使)로 삼았다. <新唐書 卷一 百八十三 畢諴傳>
금중파목[禁中頗牧] 문무를 겸비하고 재략(才略)이 탁월한 조정의 시종신(侍從臣)을 뜻하는 말이다. 파목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인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병칭한 말인데, 당 선종(唐宣宗) 때 한림학사 필함(畢諴)이 강족(羌族)을 격파할 대책을 상세히 올리자, 황제가 “우리 조정의 시종신 중에 염파와 이목 같은 명장이 있을 줄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는가.[孰謂頗、牧在吾禁署!]”라고 하고, 필함을 절도사로 임명해서 공을 세우게 했던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83 畢諴列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