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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회[耆英會]~기영회도[耆英會圖]~기예[伎藝]~기예[冀芮]


기영회[耆英會]  기영회는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가리킨다. 송(宋)나라 신종(宋神宗) 원풍(元豐) 연간에 문언박(文彦博)이 서경 유수(西京留守)로 있을 적에 백거이의 구로회(九老會)를 본떠 낙양에 있는 부필(富弼)의 집에서 결성한 모임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차례를 정하여 주연을 베풀고 시를 지어 즐겼다. 석여언(席汝言), 왕상공(王尙恭), 조병(趙丙), 유궤(劉几), 풍행기(馮行己), 초건중(楚建中), 왕근언(王謹言), 왕공신(王拱辰), 장문(張問), 장수(張壽) 등 70세부터 79세까지의 전현직 고관에다가 64세인 사마광(司馬光)이 포함되어 총 13인이었다. 뒤에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이들의 모임을 기영회라고 불렀다. <宋史 卷314 文彦博傳>

기영회[耆英會]  송나라 때 문언박(文彦博),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낙양(洛陽)의 나이가 많은 자 13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서로 즐긴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말한다. 송사(宋史) 권313 문언박열전(文彦博列傳)에 “문언박이 부필, 사마광 등 13인과 더불어서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 고사(故事)를 따라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으며 즐겼는데, 나이의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하고 관직의 높고 낮음은 따지지 않았다. 이를 낙양기영회라 했는데, 호사자들이 모두 부러워하였다.”고 하였다.

기영회[耆英會]  조선 시대 태조(太祖) 때부터 정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만 70세 이상의 원로 사대부들을 예우하기 위한 기로소(耆老所)를 설치하였는데, 기로소에서 마련한 연회를 기영회(耆英會) 또는 기로회(耆老會)라고 한다. 임금도 늙으면 기로소에 이름을 올려 임금과 신하가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기로소에 드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

기영회[耆英會]  종친, 재신(宰臣), 정승을 지낸 자로서 70세 이상 된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 기로연(耆老宴)이다. 원래는 2품 이상 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의정을 지낸 사람 중에 70세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였기 때문에 의정연(議政宴)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1474년(성종5)에 처음 시작되어 연례적으로 훈련원에서 기영회를 열었으며, 1480년에는 홍문관 관원들도 참석하도록 명하였다.

기영회도[耆英會圖]  낙양기영회도(洛陽耆英會圖). 기영회(耆英會)는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가리킨다. 낙양기영회는 송(宋)나라 때 문언박(文彦博)이 사마광(司馬光)과 부필(富弼) 등 원로 13인과 결성한 모임이다. <宋史 卷313 文彦博列傳> 이들의 모임을 그림으로 그린 낙양기영회도(洛陽耆英會圖)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유통되었고, 이와 유사한 사대부들의 사적인 모임을 그린 아회도(雅會圖)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기예[伎藝]  문선(文選) 사현부(思玄賦)의 “기예(伎藝)를 다 섞어 넣어 패옥을 엮는다.[雜伎藝以為珩]”는 구의 구주(舊注)에 “손으로 익힌 기량은 ‘伎’라고 하며, 몸으로 익힌 재능은 ‘藝’라고 한다.”고 하였다.

기예[冀芮]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이다. 본래 성명은 극예(郤芮)이나 그의 식읍(食邑)이 기(冀)여서 기예(冀芮)라고 이른 것이다. 이오(夷吾)가 돌아와 임금 자리에 오른 뒤 경(卿)이 되었으나 문공(文公: 중이重耳)을 죽이려다 진목공(秦穆公)의 꾀임에 빠져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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