簦笠相隨走路岐[등립상수주로기] 우산 삿갓 번갈며 갈림길 가다보니
一春不換舊征衣[일춘불환구정의] 한 봄 내내 묵은 옷 갈아입지 못했네
雨行山崦黃泥坂[우행산엄황니판] 빗속에 저무는 산 황토 비탈 걸어서
夜扣田家白板扉[야구전가백판비] 밤에야 농가의 흰 널 문짝 두드렸네
身在亂蛙聲裏睡[신재란와성리수] 개구리 아우성 속 곤한 몸 잠드니
心從化蝶夢中歸[신종화접몽중귀] 마음은 나비 되어 꿈속에 집에 가네
鄕書十寄九不達[향서십기구부달] 열 부치면 아홉이 못 닿는 고향편지
天北天南雁自飛[천북천남안자비] 기러기는 남북 하늘 자유로이 날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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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宿田家야숙전가 / 밤에 농가에서 묵다 / 戴復古대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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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복고[戴復古] 남송(南宋) 천태(天台) 황암(黃巖: 현재의 저장浙江 태주台州) 사람이다. 강호시파(江湖詩派)의 시인(詩人)이자 사인(詞人)으로 자는 식지(式之), 호는 석병(石屛)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배우지 못하다가 장성하여 독서에 분발하였다. 평생 벼슬하지 않고 강호를 떠돌며 산수를 즐기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강남의 산봉우리와 물가를 두루 다녔는데 스스로 ‘사해를 미친 듯 유람하며 줄곧 집을 잊었다.[狂游四海, 一向忘家.]’고 하였다. 그는 ‘공명이 반드시 농어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다.[功名未必勝蘆魚]’라고 여겼으며, 천성이 자유롭고 방달(放達)하였다. 일찍이 임경사(林景思)와 교유하였고, 육유(陸游)에게 시를 배웠으며, 강서시파(江西詩派)와 만당(晩唐)의 시풍에 영향을 받았다. 강호(江湖)의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고 자기의 작시(作詩) 태도와 방법을 읊은 7언절구 10수를 남겼는데, 이를 논시십절(論詩十絶)이라 한다. 그로 인하여 원호문(元好問)과 함께, 두보(杜甫)의 논시(論詩)를 이은 양대지맥(兩大支脈)을 형성하였다. 만년에는 고향 석병산(石屛山)에 돌아가 은거하며 여든을 넘길 때까지 장수하였다. 작품 경향은 현실주의 색채가 강하며, 지배층의 모순을 고발한 작품도 있다. 저서에 석병신어(石屛新語)와 석병시집(石屛詩集), 석병사(石屛詞)가 있다.
- 등립[簦笠] 우산과 삿갓. 簦(등)과 笠(립)은 모두 비를 막는 도구이니, 자루가 있는 것을 등(簦: 우산)이라 하고, 자루가 없는 것을 립(笠: 삿갓)이라 한다. 모두 대나무로 만든다.
- 등립상수[簦笠相隨] 簦(등)은 우산이고, 笠(립)은 삿갓이다. 우산과 삿갓을 번갈아 쓴다는 것은 비 오는 날과 햇볕이 쨍쨍한 날이 번갈아 듦을 이른다.
- 상수[相隨] 뒤따르다. 동행하다. 따라가다. 수행하다. 함께 가다. 번갈아 하다.
- 주로[走路] 걷다. 길 떠나다. 떠나다. 죽다. 도망쳐 달아나는 길. 도로(逃路). 달림길.
- 노기[路岐] 길이 갈리는 곳. 갈림길. 여러 갈래로 갈린 길.
- 정의[征衣] 나그네의 옷. 출정하는 군인의 옷(軍服). 진중(陣中)에서 입는 옷. 군복(軍服). 때로는 여행 중에 입는 옷. 객의(客衣)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엄[崦] 해가 저무는 곳이다. 광운(廣韻)에 “崦(엄)은 崦嵫(엄자)이다. 산 아래에 우천이 있는데 해가 그곳으로 진다.[崦崦嵫 山下有虞泉 日所入]”라고 하였다.
- 엄자산[崦嵫山] 중국 감숙성(甘肅省) 천수현(天水縣) 서쪽에 있는 산이다. 옛날에 해가 들어가는 곳이라는 전설이 있어, 만년(晚年) 또는 노년(老年)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광운(廣韻)에 “崦(엄)은 崦嵫(엄자)이다. 산 아래에 우천이 있는데 해가 그곳으로 진다.[崦崦嵫 山下有虞泉 日所入]”라고 하였고,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나는 희화에게 속도를 늦추라 하고, 엄자산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않게 했다.[吾令羲和弭節兮 望崦嵫而勿迫]”라는 구절에, 왕일(王逸)이 “엄자는 해가 들어가는 산이다.[崦嵫 日所入山也]”라고 주를 달았다.
- 백판[白板] 흰 널조각.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널판.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나 전혀 모르는 상태.
- 백판비[白板扉]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흰 널빤지로 만든 문짝을 가리키는데, 왕유(王維)의 시 전가(田家)에 “참새는 이끼 낀 우물가에서 새끼를 먹이고, 닭은 흰 널빤지 문짝 위에서 우누나.[雀乳靑苔井 雞鳴白版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가난한 촌가(村家)를 의미한다.
- 다기망양[多岐亡羊] 달아난 양을 찾다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 마침내 양을 잃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학문(學問)의 길이 다방면(多方面)으로 갈려 진리를 얻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서 도리어 갈 바를 모름을 이른다. 양주(楊朱)는 전국 시대 초기 위(魏)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거(子居)라고 한다. 양생(楊生) 또는 양자(楊子), 양자거(楊子居)로도 불린다.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고 그 무리를 다 동원하고 다시 양자의 종까지 동원하여 찾으려 하였다. 이에 양자가 묻기를 “한 마리 양을 잃고 찾으러 가는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라고 하자, 그가 말하기를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양자가 “양을 찾았는가?”라고 묻자 “잃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양자가 다시 “어째서 잃었는가?”라고 하자, 그가 말하기를 “갈림길 속에 다시 갈림길이 있어 나는 어디로 양이 갔는지 알 수 없기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심도자(心都子)가 말하기를 “‘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고, 학자는 방술(方術)이 많아서 사는 방법을 잃는다.[大道以多歧亡羊 學者以多方喪生]’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한다. <列子 說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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