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정심[南渡穽深] 남도(南渡)는 곧 북송(北宋)의 마지막 임금인 고종(高宗)이 금(金)나라에 쫓겨 장강(長江)을 건너서 임안(臨安)으로 도읍을 옮긴 것을 말하는데, 이때를 남송(南宋)이라 일컫는다. 함정이 깊어졌다[穽深]는 것은 바로 남송 시대에 간신 한탁주(韓侂冑) 등이 도학(道學)을 위학(僞學)이라 하여 도학자들에게 모진 박해를 가하여 모조리 숙청한 사건을 말한다. 위학이란, 남송(南宋) 시대 간신(奸臣) 한탁주(韓侂冑)가 영종(寧宗) 연간에 조여우(趙汝愚)와 권력을 겨루다가 주희(朱熹) 등 도학자(道學者)들이 모두 조여우의 편이 된 것을 본 나머지, 그가 권세를 잡고 나서는 ‘탐하고 방자한 것이 바로 사람의 진정(眞情)이요, 청렴결백하여 수행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곧 거짓된 사람’이라 하여, 마침내 도학을 위학이라 칭하고 도학을 숭상하던 당시 승상(丞相) 조여우 등 59인을 모조리 파척(罷斥)하고, 주희의 도학에 찬동하는 선비들을 일절 등용하지 말도록 금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卷345, 卷474>
남도정회립[南都程懷立] 남도(南都)는 지명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남양(南陽)이다. 정회립(程懷立)은 북송(北宋)의 화가로 초상화에 능하여 동파(東坡)의 초상화를 그렸으나, 나머지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남도편안[南渡偏安] 원래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편안함에 만족한다는 의미이다. 남도(南渡)는 남천(南遷)과 같은 말로, 진(晉)나라 원제(元帝)와 송(宋)나라 고종(高宗)이 양자강을 건너 남쪽으로 천도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또, 편안(偏安)은 하나의 왕조가 중국 전역을 통일하지 못하고 한 지역에 머물러 편안함을 얻는다는 말인데, 제갈량(諸葛亮)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선제께서, 한나라와 역적은 양립할 수 없고 한쪽 구석인 촉(蜀)에서 왕업을 편안히 할 수 없음을 염려하였습니다.[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古文眞寶 卷1>
남도화의[南渡和議] 남도(南渡)는 송나라 고종(高宗)이 금(金)나라의 침입을 당해 양자강(揚子江)을 건너 남쪽 임안(臨安)으로 도읍을 옮긴 것을 말한다. 화의(和議)는 남도한 송나라가 소흥(紹興) 12년(1142)에 회하(淮河)와 진령산맥(秦嶺山脈)을 잇는 선을 국경으로 하여 중국을 남북으로 나누어 점유하기로 금나라와 합의하고 그 조건으로 금나라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취하고 세폐(歲幣)를 바치게 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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