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남사[濫賜]~남산가[南山歌]~남산가이 판불가요[南山可移 判不可搖]


남사[南史]  중국 남조(南朝)의 1백 70년 동안 사실을 적은 역사서(歷史書).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왕조인 송(宋)・제(齊)・양(梁)・진(陳)의 170년 역사를 서술한 책으로 당(唐)나라 이연수(李延壽)가 지었다.

남사[南社]  도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시사(詩社)를 가리킨다.

남사[濫賜]  지나치게 하사한 것. 합법이 아니고 위에서 내리는 것이다.

남사고[南師古]  조선 명종(明宗) 때의 예언자로 풍수(風水)・천문(天文)・복서(卜筮)・상법(相法)에 밝아 예언을 하면 반드시 맞았다 한다.

남산[南山]  남산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고 튼튼하므로, 전하여 장수를 축원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당신은 둥글어가는 초승달 같고, 막 떠오르는 태양 같으며, 영원한 남산과 같아서,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무성한 송백과 같아서, 당신을 계승하지 않은 것이 없도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고 하였다.

남산[南山]  남산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쪽에 있는 산으로 동쪽은 하남성(河南省) 서쪽은 감숙성(甘肅省)까지 뻗쳐 있으며, 주봉(主峯)은 장안현(長安縣)의 남쪽에 있다. 이곳은 중국의 서부인 옹주(雍州)에 해당하며 서도(西都)인 장안(長安) 지방으로서 옛날 주(周) 나라의 옛터이며, 진(秦) 나라의 발상지(發祥地)이다. 일명은 종남산(終南山), 또는 귤산(橘山)・진산(秦山)・주남산(周南山)・지폐산(地肺山)이라고도 한다.

남산[南山]  종남산(終南山)을 가리키는데 진령산맥(秦嶺山脈)에 속하며 섬서(陝西) 서안서안(西安)에 있는 산이다. 초당(初唐) 때 시인 송지문(宋之問)이 이곳에 별장을 지었으나 그 자손들이 산중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해 방치되어 있던 것을 후에 왕유(王維)가 들어가 그 토대에 다시 집을 짓고 살았다. 왕유는 모두 스무 곳의 경치 좋은 곳을 조성하고 각각 이름을 붙인 뒤 망천이십경(輞川二十景)이란 시를 지어 문우 배적(裴迪)과 주고받았다. 남쪽에 있는 산을 가리키기도 한다.

남산가[南山歌]  위(衛) 나라 영척(甯戚)이 제(齊) 나라에 가서 환공(桓公)에게 쓰이기를 바라는 뜻에서 쇠뿔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의 이름인데, 그 내용은 “남산은 채색이 아름답고 백석은 반짝반짝 빛나는데, 그 가운데 잉어가 있어 길이가 한 자 반이 되도다. 세상에 나서 요순 같은 임금 만나지 못해, 짧은 홑옷이 겨우 정강이만 가릴 뿐이네.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소를 먹이노니, 기나긴 밤 지루해라 언제나 날이 밝을꼬.[南山粲粲 白石爛爛 中有鯉魚 長尺有半 生不遭堯與舜 短布單衣纔至骭 從昏飯牛至夜半 長夜漫漫何時旦]”이다.

남산가[南山歌]  위(衛)나라 영척(甯戚)이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 쓰이기를 바라는 뜻에서 남산가(南山歌)를 불렀는데, 그 노래에 이르기를 “남산(南山)이 환하니 흰 돌 깨끗도 하여라. 요순(堯舜)의 선양(禪讓)하던 때를 만나지 못하니, 짧은 삼베 홑옷 정강이에 이르노라. 저녁부터 소를 먹여 한밤중에 이르니, 길고 긴 밤 언제나 아침이 되려는가.[南山矸 白石爛 生不逢堯與舜禪 短布單衣適至骭 從昏飯牛薄夜半 長夜漫漫何時旦]”라고 하였다.

남산가[南山歌]  춘추 시대에 영척(甯戚)이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 벼슬을 얻고자 했으나 가난하여 만날 방법이 없자, 장사치가 되어 짐수레를 끌고 제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였다. 어느 날 성문 밖에서 묵는데, 환공이 손님을 맞이하러 성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영척이 소를 먹이다가 수레 아래에서 멀리 환공을 바라보고 쇠뿔을 두드리며 슬프게 노래하기를 “남산에 돌이 솟아, 하얀 돌이 반짝이네. 살아서 요순 같은 성군을 못 만나니, 짧은 잠방이가 정강이도 못 가리네. 긴긴 밤 더디 가니 아침이 언제 올까.[南山矸 白石爛 生不逢堯與舜禪 短布單衣纔至骭 長夜漫漫何時旦]”라고 하였는데, 환공이 이 노래를 듣고 불러서 등용하였다. 이 내용은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覽), 연감유함(淵鑑類函) 등에 실려서 전하는데, 출전에 따라 글자에 다소 차이가 있다. 이 노래를 반우가(飯牛歌), 남산가(南山歌)라고 한다.

남산가이 판불가요[南山可移 判不可搖]  남산을 옮길 수 있을 수 있을지언정 이미 내린 결정은 절대로 고칠 수 없다는 말이다. 한번 먹은 결심은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로 나타낼 때 쓴다. 당(唐)나라 때 이원굉(李元紘)이 옹주 사호참군(雍州司戶參軍)으로 있을 적에 때마침 권세가 천하를 진동하던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전답(田畓)에 물을 대는 수차(水車)를 한 농민에게서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자, 이원굉이 그 수차를 농민에게 돌려주도록 판결을 작성하였는데, 장사(長史) 두회정(竇懷貞)이 크게 놀라서 그 판결문을 고치자, 이원굉이 그 판결문의 뒷면에다 크게 쓰기를 “남산은 옮길 수 있어도 판결한 죄안은 흔들 수 없다.[南山可移 判不可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舊唐書 卷98 李元紘列傳>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