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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석곽[南山石槨]~남산송백[南山松栢]~남산수[南山壽]


남산석[南山石]  가난한 영척(寗戚)이 소를 치면서 불렀다는 노래이다. 춘추 시대 제(齊) 나라 영척(甯戚)이 소[牛]를 기르고 있을 때 소뿔을 두드리면서 “남산은 선명하고 백석은 찬란하도다. 태어나서 요순 세상 만나지 못하니 긴 밤이 아득하다, 어느 때 밝아질까.[南山矸 白石爛 生不逢堯舜也 長夜漫漫何時旦]”라고 노래하였는데,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그 노래를 듣고 불러서 재상을 삼았다 한다. <蒙求 中 甯戚扣角>

남산석[南山石]  남산백석(南山白石)의 약칭이다. 고시(古詩) 반우가(飯牛歌) 중의 한 대목이다. 사기(史記) 권83 노중련열전(魯仲連列傳)에 “소를 먹이던 영척(甯戚)에게 환공(桓公)이 국사를 맡겼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제 환공(齊桓公)이 밤에 손님을 맞이하려고 나갔는데, 영척이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남산의 언덕에 백석이 찬란하도다. 살아서 왕위를 이양하는 요순(堯舜)을 보지 못한 채 짧은 베옷을 입고 저녁부터 밤중까지 소를 먹이고 있다네. 긴 밤은 끝없으니, 어느 때에 아침이 될지를 모르겠네.[南山矸 白石爛 生不逢堯與舜禪 短布單衣纔至骭 長夜漫漫何時旦]’라 하였다.”고 하였다. 이 내용은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覽), 연감유함(淵鑑類函) 등에 실려서 전하는데, 출전에 따라 글자에 다소 차이가 있다. 이 노래를 반우가(飯牛歌), 남산가(南山歌)라고 한다.

남산석곽[南山石槨]  한서(漢書) 권50 장석지전(張釋之傳)에 이르기를 “장석지(張釋之)가 정위(廷尉)로 있을 때, 문제(文帝)를 따라 패릉(霸陵)에 갔었는데, 문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북산(北山)의 석재(石材)로 곽(椁: 외관外棺)을 만들고 저서(紵絮: 솜)를 베어서 관 속에 진열하고 그 사이에 옻칠을 하면 어찌 무덤을 움직여 부장품을 훔쳐갈 수 있겠는가.’라 하자 신하들이 모두 좋은 말씀이라 칭찬하였으나, 장석지는 홀로 ‘만약 이 속에 욕심낼 만한 물건(부장품)이 있으면 비록 쇳물을 부어 남산(南山)처럼 견고하게 만들더라도 틈이 있을 것이요, 만약 이 속에 욕심낼 만한 물건이 없으면 비록 석곽(石椁)이 없더라도 또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습니까.[使其中有可欲者, 雖錮南山猶有隙; 使其中無可欲者, 雖無石槨, 又何戚焉.]’라고 하니, 문제가 좋은 말이라고 칭찬하였다.”라고 하였다.

남산송백[南山松栢]  장수(長壽)를 축원하는 말이다. 시경(詩經) 천보(天保)에 “초승달과 같으며, 떠오르는 해와 같으며, 장수하는 남산과 같아, 이지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무성한 소나무 잣나무 같아, 그대를 계승하지 않음이 없도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남산수[南山壽]  구여지축(九如之祝)의 하나이다. 원래는 기업(基業)이 장구하여 남산(南山) 같음을 일컫는 것인데,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말로 전용한다. 구여(九如)는 시경(詩經) 천보(天保)에 나오는 아홉 가지의 축복으로, 곧 여산(如山)・여부(如阜)・여강(如岡)・여릉(如陵)・여천방지(如川方至)・여월항(如月恒)・여일승(如日升)・여남산수(如南山壽)・여송백무(如松柏茂)를 가리킨다.

남산수[南山壽]  임금에게 축복하는 말로서, 남산(南山)은 중국의 종남산(終南山)을 가리킨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당신은 둥글어 가는 초승달 같고 막 떠오르는 태양 같으며 영원한 남산과 같아서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무성한 송백과 같아서 당신을 끝없이 계승하지 않은 것이 없도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는 군주가 신하의 노고를 위로하였으므로 신하들이 이에 답하여 군주의 장수를 축원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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