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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죽포[南山竹苞]~남산지가[南山之歌]~남산지수[南山之壽]


남산종두희[南山種豆稀]  한(漢) 나라 양운(楊惲)이 재상의 아들로 이른 나이에 현달(顯達)했다가 파직을 당한 뒤 시골에 돌아와서 불만스러운 뜻을 시로 표현하기를 “남산의 저 밭, 황무지로 놔두었네. 1백 묘(畝)에 심은 콩, 콩깍지만 남았네.[田彼南山 蕪穢不治 種一頃豆 落而爲萁]”라고 하였는데, 남산(南山)은 임금을, 불치(不治)는 어지러운 조정을, 일경(一頃)은 백관을, 두(豆)는 재야(在野)에 버려진 자기 자신을, 기(萁)는 아첨하는 조관(朝官)들을 뜻한다고 한다. <漢書 卷66>

남산죽포[南山竹苞]  시경(詩經) 사간(斯干) 편에 새 궁실을 낙성한 것을 축하하면서 그 건물을 형용한 표현으로 사용된 말인데, 그 시에 “시내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윽한 남산이 바라보이는 곳. 짙푸른 대숲이 우거진 듯 소나무가 무성한 듯.[秩秩斯干, 幽幽南山. 如竹苞矣, 如松茂矣.]”이라고 하였다.

남산지가[南山之歌]  남산(南山)은 임금이나 웃어른의 축수를 비는 말이다. 시경(詩經) 천보(天保)에 “둥글어가는 초승달, 막 떠오르는 태양, 영원한 남산과 같아서,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무성한 송백과 같아서, 끝없이 계승하지 않은 것이 없도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남산지가[南山之歌]  춘추시대의 위(衛)나라 사람 영척이 우각(牛角)을 치며 가요를 불러 제환공(齊桓公)에게 들리어 마침내 정승에 임용되었다는 노래이다. 남산시(南山詩).

남산지송[南山之頌]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이르기를 “변함없는 달과 같고, 떠오르는 해와 같으며, 언제나 버티고 있는 남산과 같아, 무너지지 않고 이지러지지 않는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라고 하였고, 또 “하늘이 당신을 편안하게 하사, 흥하지 않음이 없게 한지라, 마치 산인 양 언덕인 양, 높은 뫼나 큰 능인 양 흥성하고, 마치 냇물이 흐르고 흘러, 보태지 않음이 없는 것 같네.[天保定爾 以莫不興 如山如阜 如岡如陵 如川之方至 以莫不增]”라고 하였다. 임금의 덕을 칭송하고, 장수(長壽)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뜻이다.

남산지수[南山之壽]  남산은 곧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축복하는 말로서,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당신은 둥그러져 가는 초생달 같고, 막 떠오르는 태양 같으며, 영원한 남산과 같아서,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무성한 송백과 같아서, 당신을 끝없이 계승하지 않은 것이 없도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남산(南山)은 종남산(終南山)으로 원래 주(周)나라 도성인 호경(鎬京)의 남쪽에 있는 산인데, 후세에는 모든 도성의 남산을 종남산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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