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사[郎舍] 문하부(門下部)의 간관(諫官). 고려 시대 문하성(門下省), 첨의부(僉議府), 문하부(門下府) 등에 딸리어 간쟁(諫諍)과 봉박(封駁)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부서(部署), 또는 그 부서의 관원(官員)을 말한다.
낭사[琅邪]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읍(邑) 이름이다. 진대(秦代)에는 군(郡)을 두었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교남시(膠南市) 낭사대(琅邪臺) 서북쪽에 있었다. ‘邪(사)’는 ‘琊(야)’로도 쓴다. <讀史方輿紀要 州域形勢 秦琅邪>
낭사[囊沙] 한(漢)의 한신(韓信)이 초(楚)의 용저(龍且)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전쟁할 때 밤중에 몰래 일만여 개의 모래 자루를 만들어 상류를 막은 다음, 용저의 군사를 강으로 유인하여 막았던 둑을 한꺼번에 터서 승리하였던 고사(故事)가 있다.
낭사결[囊沙決] 한(漢)나라 한신(韓信)이 적장 용저(龍且)와 유수(濰水)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을 때, 밤중에 만여 개의 자루에다 모래를 담아 유수의 상류를 막은 뒤에 강 복판으로 적군을 유인하여 그 둑을 일시에 터뜨려 승리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九十二 淮陰侯傳>
낭사배수[囊砂背水] 낭사(囊砂)의 계략(計略)과 배수(背水)의 진이라는 뜻으로, 전한(前漢)의 한신(韓信)이 사용(使用)한 병법(兵法)을 이르는 말이다.
낭사옹수[囊沙壅水] 항우(項羽)가 제(齊)를 구원하려고 장수 용저(龍且)를 보내 제・초의 군사와 한(漢)의 군사가 유수(濰水)에서 대치했다. 한신(韓信)이 밤에 사람을 시켜 1만여 개의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강물을 막았다[囊沙而壅水]가 적군이 반쯤 건너올 때 거짓 패한 척하고 달아나자 용저가 추격했다. 그러나 한신은 막았던 모래주머니를 터서 싸움에 크게 이기고 용저를 죽이고 제왕을 사로잡았다. <漢書 卷34 韓信傳>
낭사용저[囊沙龍且] 낭사(囊沙)는 모래주머니이고, 용저(龍且)는 초한(楚漢) 시대 초(楚)나라 장수의 이름이다. 한(漢)나라 장수 한신(韓信)이 초나라 장수 용저와 싸울 적에 유수(濰水)를 사이에 두고 각각 진(陣)을 쳤는데, 한신이 밤중에 사람을 시켜 모래주머니 1만여 개를 만들어서 유수의 상류(上流)를 막아 놓게 하고는, 다음 날 군대를 이끌고 유수를 반쯤 건너서 용저의 군대를 공격하다가 거짓 패배한 척하고 후퇴하여 달아나자, 용저가 한신을 추격하여 물을 건너왔다. 이때 한신이 사람을 시켜 그 모래주머니로 막은 둑을 트게 하니 큰물이 일시에 쏟아져 내려 용저의 군대 태반이 물을 건너오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한신이 용저를 쳐 죽이고 초군(楚軍)을 크게 격파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낭사원[郎士元] 자(字)는 군주(君胄), 중산(中山: 일설에는 정주定州) 사람이다.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나라 대종(代宗) 대력(大曆) 연간을 전후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천보(天寶) 말 진사가 되었고, 보응(寶應) 초에 위남(渭南)의 위(尉)로 임명되었고, 후에 좌습유(左拾遺)를 거쳐서 영주자사(郢州刺史)로 임명되었다. 시에 능하여 전기(錢起)와 이름을 나란히 했다. 사람들이 “앞에는 심전기(沈佺期)와 송지문(宋之問)이 있고, 뒤에는 전기와 낭사원이 있다.[前有沈宋, 後有錢郞.]”라고 했다. 시집 한 권이 있었다고 신당서예문지(新唐書藝文志)에 전한다.
낭사이옹수[囊沙而壅水] 기원전 204년 11월, 한신이 유수(濰水)에서 용저(龍且)가 이끄는 초나라의 20만 대군과 대치할 때, 밤에 몰래 만여 개의 모래주머니로 강 상류의 물을 막고는 용저를 공격하다가 패주하는 척하여 유인하였다. 용저가 추격해 오자 물을 막았던 모래주머니 둑을 터서 용저의 군대가 물살에 휩쓸리는 틈에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資治通鑑 卷10 漢紀>
낭사일곡[浪死一曲] 낭사(浪死)의 한 곡조. 수 양제(隋煬帝)가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산동(山東) 지방에 조서를 내려 군사를 징발하고 백성을 동원시켜 군량을 운반하게 하므로 백성들이 곤궁에 빠져 도적이 되었는가 하면, 무향요동랑사가(無向遼東浪死歌: 괜히 요동에 나갔다가 개죽음만 당하지 말라는 뜻의 노래)까지 지어 충동시키므로 징발되었던 군사들이 많이 도적의 무리에 가담하였다.
낭사지계[囊沙之計] 전한(前漢)의 한신(韓信)이 모래 담은 자루를 냇물 목을 막았다가 적병이 그 하류로 건너는 기회를 타서 모래자루를 터놓아 적병을 침살(沈殺)시킨 계략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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