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日芒鞋信脚行[종일망혜신각행] 종일 짚신 신고 발길 따라 가노라니
一山行盡一山靑[일산행진일산청] 산 하나 지나면 산 하나 또 푸르러
心非有像奚形役[심비유상해형역] 마음에 상 없거늘 어이 몸의 부림받고
道本無名豈假成[도본무명기가성] 도는 본시 무명인걸 어이 빌어 이루랴
宿霧未晞山鳥語[숙무미희산조어] 묵은 안개 걷기도 전 산새는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춘풍부진야화명] 봄바람 멎지 않아도 들꽃은 환하구나
短筇歸去千峯靜[단공귀거천봉정] 지팡이로 돌아가니 뭇 봉이 고요하고
翠壁亂煙生晩晴[취벽난연생만청] 푸른 벼랑 서린 안개 느지막이 개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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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峻上人二十首[其八]증준상인20수8 / 준상인에게 주다 / 金時習김시습>
※ 매월당집(梅月堂集)에 실려 있다. 속동문선(續東文選)에는 무제삼수(無題三首) 중 한 수(首)로 소개되어 있다.
- 김시습[金時習] 조선 세종(世宗)에서 성종(成宗) 때의 학자이자 문인.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峯), 청한자(淸寒子), 벽산(碧山) 등을 썼다. 법호는 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주기론적(主氣論的) 입장에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 흡수하여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켰다. 한양의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세 살 때 맷돌에 보리를 가는 것을 보고 “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 울리고, 노란 구름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고 시를 읊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다섯 살 때 궁으로 들어가 세종을 알현하였다. 열다섯 살 때 모친을 잃고 외가에 의탁하였으나 3년 뒤 외숙모마저 세상을 뜨자 다시 상경했을 때는 부친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연속되는 가정의 불우 속에서도 결혼을 하고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읽던 책을 불태워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이후 십 년 가까이 전국을 유랑하였다. 여러 차례 세조의 부름을 받고도 응하지 않고 금오산실(金鰲山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 상경하여 잠시 성동에 살기도 하였으나 다시 서울을 떠나 방랑하다가 충남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세상을 떴다. 일생 절개를 지키며 유불(儒佛)을 포섭한 사상과 뛰어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영월에 있는 육신사(六臣祠)에 배향되었다.
- 망혜[芒鞋] 초혜(草鞋). 짚신. 억새풀로 만든 신발. 마혜(麻鞋)를 잘못 일컫는 말. 미투리.
- 형역[形役] 마음이 육체나 물질의 지배를 받음. 육체의 노예. 마음이 육체의 보존과 안락 등을 위해 부림을 당하는 것. 마음이 육체(肉體)적 생활의 노예가 되어 사역(使役) 당하는 것. 마음이 형체의 부림을 받아 구애되는 것. 정신(精神)이 물질(物質)의 지배(支配)를 받음. 마음이 공명(功名)과 이록(利祿) 따위에 얽매이는 것. 외물(外物)로 인해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구속됨.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돌아가련다, 전원이 묵어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미 내 마음을 형체의 사역으로 삼았거니, 어찌 실의하여 홀로 슬퍼하기만 하겠는가.[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라고 하였다. <陶淵明集 卷5>
- 숙무[宿霧] 전날 밤부터 낀 안개.
- 단공[短筇] 짧은 지팡이.
- 만청[晩晴] 오후 늦게 날이 갬. 오후 늦게 갠 하늘. 저녁 때에 갠 날씨. 저녁 무렵에 맑게 개인 하늘. 저물녘 맑게 갠 날씨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이때의 깨끗한 풍광을 유달리 좋아하여 많이 읊었다. 참고로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만청(晩晴)에 “천심은 유초를 어여뻐하거니와, 인간은 만청을 중시한다오.[天意憐幽草, 人間重晩晴.]”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540 晩晴>
<매월당집梅月堂集 증준상인贈峻上人(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