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厭人間強迎送[고염인간강영송] 억지로 사람을 맞고 보냄이 싫어서
抽此形骸臥碧洞[추차형해와벽동] 이 몸 빼내어 푸른 골짜기에 누웠네
是非榮辱於吾何[시비영욕어오하] 시비와 영욕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松風吹破槐陰夢[송풍취파괴음몽] 솔바람 불어와 홰나무 그늘 꿈 깨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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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年好與煙霞住[장년호여연하주] 나이드니 산수에 사는 것을 좋아하여
拾橡供廚送朝暮[습상공주송조모] 상수리 주워 공양하며 하루를 보내네
石床高枕睡陶然[석상고침수도연] 돌평상에 베개 높이 느긋이 잠에 드니
有夢不飛紅塵路[유몽부비홍진로] 꿈에라도 속세 길로 날아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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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言방언 / 나오는 대로 지껄이다 / 金時習김시습>
※ 매월당집(梅月堂集) 시집(詩集) 권1(卷一)에 방언(放言)이라는 제목으로 묶은 14수(首)의 시가 보이는데 그 중 마지막 두 수이다.
- 김시습[金時習] 조선 세종(世宗)에서 성종(成宗) 때의 학자이자 문인.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峯), 청한자(淸寒子), 벽산(碧山) 등을 썼다. 법호는 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주기론적(主氣論的) 입장에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 흡수하여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켰다. 한양의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세 살 때 맷돌에 보리를 가는 것을 보고 “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 울리고, 노란 구름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고 시를 읊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다섯 살 때 궁으로 들어가 세종을 알현하였다. 열다섯 살 때 모친을 잃고 외가에 의탁하였으나 3년 뒤 외숙모마저 세상을 뜨자 다시 상경했을 때는 부친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연속되는 가정의 불우 속에서도 결혼을 하고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읽던 책을 불태워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이후 십 년 가까이 전국을 유랑하였다. 여러 차례 세조의 부름을 받고도 응하지 않고 금오산실(金鰲山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 상경하여 잠시 성동에 살기도 하였으나 다시 서울을 떠나 방랑하다가 충남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세상을 떴다. 일생 절개를 지키며 유불(儒佛)을 포섭한 사상과 뛰어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영월에 있는 육신사(六臣祠)에 배향되었다.
- 방언[放言] 거리낌이 없이 함부로 말함. 또는 그 말. 나오는 대로 말함. 거침없이 말함. 나오는 대로 무책임하게 지껄이는 말. 세상일을 이야기하지 않다.
- 고염[苦厭] 싫어하다. 귀찮다. 혐오하다.
- 괴음몽[槐陰夢] 인생사가 한바탕의 허망한 꿈이라는 의미이다. 당(唐)나라 이공좌(李公佐)의 전기소설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순우분(淳于棼)이 술을 마시고 홰나무[槐樹] 아래에서 잠이 들었는데,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는 나라에 초빙을 받고 가서 그곳 왕의 부마가 되어 남가 태수(南柯太守)를 30년 동안 지내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뒤에 보니 홰나무 아래에 커다란 개미집이 하나 있었고, 남쪽 가지에는 또 작은 개미집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꿈에서 보았던 괴안국과 남가군(南柯郡)이었다고 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괴안몽(槐安夢)’,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성어가 있다.
- 연하[煙霞] 연기와 안개.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 안개가 낀 듯한 고요한 산수의 경치. 안개와 노을이라는 본뜻에서 전하여 산수(山水), 산림(山林)을 의미하는데, 속세를 벗어난 산수 깊은 곳을 말한다. 당(唐)나라 전유암(田遊巖)이 벼슬을 그만둔 뒤에 온 가족을 데리고 태백산(太白山)에 들어가 20여 년 동안 은거하다가 뒤에 기산(箕山)으로 들어가자, 고종(高宗)이 그를 불러 산속 생활이 어떤지를 물어보니 그가 대답하기를 “신은 물과 바위의 병이 이미 고황에 들고 안개와 노을의 고질병이 들었는데, 성상의 시대를 만나 다행히 소요하고 있습니다.[臣泉石膏肓, 煙霞痼疾, 旣逢聖代, 幸得逍遙.]”라고 한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田遊巖> 천석고황(泉石膏肓). 연하고질(煙霞痼疾).
- 공양[供養] 부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침. 어른에게 음식(飮食)을 드림.
- 도연[陶然] 한적하고 즐거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모양. 즐겁고 편안한 모양. 흐뭇하다. 느긋하다. 도잠(陶潛)의 시 시운(時運)에 “이 한 잔 둘러 마시고, 도연히 스스로 즐긴다네.[揮玆一觴 陶然自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김시습金時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