倦馬看山好[권마간산호] 게으른 말 산 구경에 더 좋아
停鞭故不加[집편고부가] 채찍 멈춰 일부러 치지 않네
岩間纔一路[암간재일로] 바위 사이 바듯 오솔길 하나
烟處或三家[연처혹삼가] 연기 이는 곳에는 집 세 채
花色春來矣[화색춘래의] 꽃 빛깔이 봄이 왔구나
溪聲雨過耶[계성우과야] 시냇물 소리가 비 지났구나
渾忘吾歸去[혼망오귀가] 돌아갈 나 까맣게 잊고 있는데
奴曰夕陽斜[노왈석양사] 종 이르길 석양이 비꼈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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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山간산 / 산을 구경하다 / 金炳淵김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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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연[金炳淵]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방랑(放浪) 시인(詩人). 자는 성심(性深)이며 호는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 불린다. 본관은 안동(安東). 경기도 양주 출생.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즉흥적인 풍자시를 많이 지어서 남겼다. 평안도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항복한 죄로 집안이 멸족(滅族)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도움으로 여섯 살 때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廢族)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화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하여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 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 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 전남 화순)에서 57세에 객사하였다.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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