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공순치[魯恭馴雉] 후한 장제(章帝) 때에 각 지방의 벼가 멸구의 피해를 입었으나 노공(魯恭)이 수령으로 있는 중모(中牟) 지방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소문이 나자, 하남 윤(河南尹) 원안(袁安)이 감찰관 비친(肥親)을 보내 그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노공은 그를 맞아 함께 들길을 가다가 뽕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꿩이 날아와 그들의 곁에 앉았는데 때마침 아이가 함께 있었다. 비친이 아이에게 묻기를 ‘아이야, 왜 잡지를 않느냐?’고 하니, 아이가 ‘꿩은 지금 새끼를 데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비친은 깜짝 놀라 일어나서 노공과 작별하며 말하기를 ‘내가 온 것은 당신의 정사 현황을 살펴보려 한 것인데, 이제 보니 해충이 고을을 범하지 않은 것이 하나의 이적(異迹)이고, 교화가 새짐승에게까지 미친 것이 두 가지 이적이고, 어린아이가 어진 마음이 있으니 세 가지 이적입니다. 오래 머무르면 당신에게 폐만 끼칠 뿐입니다.’라 하고, 돌아갔다 한다.
노공왕[魯恭王] 유여(劉餘)이다. 출생은 미상이고, 무제(武帝) 원삭(元朔) 원년(B.C.128)에 죽었다. 경제(景帝)의 다섯째 아들이다. 경제(景帝) 전2년(B.C.155)에 회양왕(淮陽王)에 봉해지고 뒤에 노왕(魯王)으로 옮겼다. 궁실을 수리하기 좋아하였는데, 공자의 옛 집을 헐어서 그 집을 넓히다가 벽 속에서 고문경전(古文經傳)을 얻었다. 죽자 시호를 공이(恭)라고 하였다.
노공응융적[魯公膺戎狄] 노공(魯公)은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노(魯)나라에 봉해진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며, 그가 상중에 있을 때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주(周)나라를 배반하고 함께 일어나 노를 침략했으므로 졸곡을 하고 곧장 제후의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에 나섰던 것을 말한다. 토벌에 앞서 비(費) 땅에서 군사들을 경계하며 맹서한 내용이 서경(書經) 권10 비서(費誓)에 전하며, 신하들이 군주와 국가를 칭송하는 시를 지어 노공을 기린 것이 시경(詩經) 비궁(閟宮) 편이다.
노공정벌시[魯公征伐時] 노공(魯公)은 노 나라에 봉해진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을 말한다.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주(周) 나라를 배반하고 함께 일어나 노를 침략하므로 백금이 방백(方伯)으로서 제후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한 때를 말한다. <書經 卷10 費誓>
노과[魯戈] 노과는 노양공(魯陽公)의 창[戈]이라는 뜻이다. 옛날 춘추 시대 초(楚)나라 노양공이 한(韓)나라와 싸울 적에 전투가 한창 절정에 이르러서 태양이 마침 서쪽으로 기울자 창을 잡고 태양을 향해 휘두르니, 해가 3사(舍) 즉 90리(里)를 되돌아왔다는 전설이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에 전한다.
노과[蘆課] 청대에 강남, 호광, 강서의 해안가나 강가 등지에 갈대밭을 만들어 등급을 나누고 세금을 부과한 것을 말한다.
노관[蘆管] 호가(胡笳)를 지칭하며 호인(胡人)들이 갈대잎을 말아 만든 악기이다. 갈잎을 말아 만든 이민족(異民族)의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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