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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일서[魯連一書]~노련자[魯連子]~노련취요성[魯連取聊城]


노련이팽해구원연 이위불과제진[魯連以烹醢懼垣衍 而魏不果帝秦]  노중련(魯仲連)이 삶아 죽이고 젓을 담근다는 말로 신원연(新垣衍)을 겁주니 위(魏)나라는 과연 진(秦)나라를 임금으로 섬기지 않았다. <蘇洵 諫上> 진(秦)나라 군사가 동쪽으로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위(魏)나라 안리왕(安釐王)이 객인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평원군(平原君)에게 조(趙)나라가 진 소왕(秦昭王)을 천자(天子)로 높여 군사를 물리게끔 하였다. 평원군(平原君)은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노중련(魯仲連)은 이에 평원군(平原君)을 통하여 신원연(新垣衍)에게 유세하여 말하기를 “양(梁: 위魏)나라는 아직 진(秦)나라를 임금으로 높임으로 해서 입을 해를 보지 못하였을 따름입니다.……지난날 귀후(鬼侯)와 악후(鄂侯), 문왕(文王)은 주(紂)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그러나 주(紂)는 마침내 귀후(鬼侯)를 젓갈 담았고 악후(鄂侯)를 포를 떴으며 문왕(文王)을 가두었습니다. 그러한 폭군을 어찌하여 사람들은 그래도 제왕(帝王)이라 칭하며 마침내 스스로 포를 뜨거나 젓을 담는 곳으로 나아간 것입니까?……또한 진(秦)나라는 끊임없이 칭제(稱帝)할 것이며 또한 제후의 대신을 바꿀 것이니……장군은 또한 어떻게 옛 총애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감히 다시는 진(秦)나라를 천자(天子)라 하려 하지 않았다. <戰國策 趙策 3>

노련일서[魯連一書]  전국 시대 연(燕)나라 장수가 제(齊)나라를 침공하여 요성(聊城)을 지키면서 끝까지 항거하고 있던 중에,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이 화살 하나[一箭]에 글을 매달아 성안으로 쏘아 보냈는데, 그 글을 보고는 3일 동안 울다가 항복하며 자결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노련자[魯連子]  노련자는 전국(戰國)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인 노중련(魯仲連)을 가리킨다. 그가 조(趙)나라에 가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을 포위했는데, 이때 위(魏)나라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 임금을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진나라가 방자하게 천자를 참칭(僭稱)한다면 나는 동해를 밟고 빠져 죽겠다.”고 하니,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후퇴시켰다 한다. <史記卷83 魯仲連鄒陽列傳>

노련취요성[魯連取聊城]  노련(魯連)은 노중련(魯仲連)으로, 전국시대 말기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이다. 기이한 계책을 잘 내어 명성이 높았으나 얽매여 사는 것을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요성(聊城)은 제(齊)나라의 성이다. 명장 악의(樂毅)가 이끈 연군(燕軍)의 공격에 의해 거의 멸망 직전에 몰렸던 제(齊)나라가, 전단(田單)의 반간계로 악의(樂毅)를 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일대 반격을 가하여 연(燕)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빼앗겼던 성들을 수복하였는데, 이때 요성(聊城)을 수비하던 연(燕)나라의 장수가 성을 사수하여 전단(田單)은 1년이 넘도록 이를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노중련(魯仲連)은 연(燕)나라 장수에게 ‘이 수성전(守城戰)이 의미가 없고 사졸과 백성들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설득하는 글을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 안으로 쏘아 보냈는데, 이 글을 읽은 연(燕)나라 장수가 과연 싸움을 중지할 것을 결심하여 군대를 퇴각시키고 자신은 자결하여 제(齊)나라가 마침내 요성(聊城)을 수복하였다. <史記 권83 魯仲連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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