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자가 밤에 책을 읽는데,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놀란 듯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이상도 하구나! 처음에는 비오는 소리 같고, 음산한 바람소리 같이 들리더니, 기운차게 뛰어올라 물결 부딪치는 소리로다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며 비바람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듯하니, 그것이 물건에 닿으니 칼소리도 같고, 무딘 쇠붙이 맞부딪치는 소리도 같아 금과 철이 다 운다.
또 마치 적을 향하는 병사가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호령도 들리지 아니하고 다만 사람과 말의 가는 소리만 들린다.
내가 동자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서 이를 보고 오너라.”
동자가 대답하였다.
“별과 달은 희고 맑은 은하수가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소리는 없고, 소리는 나무가지 사이에서 들립니다.”
내가 말하였다.
“아! 슬프다! 이것이 가을 소리로다. 어찌하여 왔는가?”
대개 저 가을은, 그 빛은 참담하여 안개 흩어지고 구름 걷히며, 그 모양은 맑고도 밝아 하늘 높고 햇빛 투명하며, 그 기운은 무섭도록 차가워서 살과 뼈를 찌르는 듯하며, 그 마음은 몹시 쓸쓸하여 산천이 적적하고 고요하다. 그러므로 그 소리 몹시 구슬프고 절박하며 부르짖듯 세차게 일어난다.
풍성한 풀은 짙은 녹색으로 화분 놓으면서 다투어 무성하고, 아름다운 나무 시퍼렇게 무성하여 기뻐할 만하더니, 풀은 가을 소리에 떨리어 빛이 변하고 나무도 이것을 만나서 잎이 떨어지니, 그 꺾여 시들고 영락하는 까닭은 곧 하나의 기운이 너무 매운 때문인 것이다.
가을은 형관(刑官)이요, 시절에 있어서는 음기(陰氣)이다.
또 무기(武器)의 상(象)이라 오행(五行)에 있어서는 금이 되니, 이것을 천지의 의기(義氣)라고 한다. 항상 쌀쌀하게 말려 죽이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는다.
하늘이 만물에 있어서, 봄에는 생장(生長)하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다.
그러므로 그것이 음악에 있어서는 상성(商聲)이 서쪽의 음악을 주관하고, 이칙(夷則)은 칠월의 음률이 되니, 상(商)은 상(傷)이라, 만물이 이미 늙어서 슬퍼하고 상심하는 것이다. 이(夷)는 살육이라, 만물이 한창 때를 지나면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
슬프다! 초목은 감정이 없는 것이긴 하나 때에 있어서 나부끼어 떨어진다. 사람은 움직이는 물건이 되어 오직 만물의 영장인지라, 백 가지 근심이 그 마음을 감동시키며, 만 가지 일이 그 몸을 수고롭혀서 마음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의(情意)를 움직인다.
그런데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그 지혜로 능치 못한 바를 근심함에야 어찌하겠는가!
그 윤택 흐르듯 붉은 것이 고목이 되고, 그 칠흑같은 검은 것이 백발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찌하여 금석의 바탕도 아닌데 초목과 더불어 번영함을 다투고자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이것을 손상케 하든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두고 한하겠는가!
동자는 대답도 없이 머리를 떨군 채 잠이 들고, 다만 들리는 것은 사방 벽에서 벌레소리만이 즐즐 나의 탄식 소리에 더하는 듯하여라.
<秋聲賦추성부 / 가을 소리 / 歐陽修구양수>
歐陽子方夜讀書 聞有聲自西南來者 悚然而聽之曰異哉 初淅瀝以蕭颯 忽奔騰而澎湃 如波濤夜警 風雨驟至 其觸於物也 鏦鏦錚錚 金鐵皆鳴 又如赴敵之兵 銜枚疾走 不聞號令 但聞人馬之行聲 予謂童者 此何聲也 汝出視之 童子曰星月皎潔 明河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 予曰噫嘻悲哉 此秋聲也 胡爲乎來哉 蓋夫秋之爲狀也 其色慘淡 其容淸明 天高日晶 其氣慓洌 砭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廖 故其爲聲也 凄凄切切 呼號憤發 豊草綠縟而爭茂 佳木蔥籠而可悅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其所以摧敗零落者 乃一氣之餘烈 夫秋刑官也 於時爲陰 又兵象也 於行爲金 是謂天地之義氣 常以肅殺而爲心 天地於物 春生秋實 故其在樂也 商聲主西方之音 夷則爲七月之律 商傷也 物旣老而悲傷 夷戮也 物過盛而當殺 嗟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人爲動物 惟物之靈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有動于中 必搖其精 而況 思其力之不及 憂其智之所不能 宜其渥然丹者爲枯木 黟然黑者爲星星 奈何非金石之質 欲與草木而爭榮 念睡爲之狀賊 亦何恨乎秋聲 童子莫對 垂頭而誰但聞四璧 蟲聲啷啷 如助予之歎息. <秋聲賦 / 歐陽修>
- 구양수[歐陽脩] 북송(北宋)의 정치가 겸 문인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길주(吉州) 여릉(廬陵) 사람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문구를 살 돈이 없어 어머니가 직접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가며 가르쳤다고 한다. 24살에 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벼슬은 우정언(右正言)・지제고(知制誥)・양주(揚州)・영주(潁州)의 지주(知州)와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인종과 영종 때 범중엄(范仲淹)을 중심으로 한 관료파에 속해 활약하다가 신종 때 동향의 후배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며 관직에서 물러났다. 송대 초기의 미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시로는 매요신(梅堯臣)과 겨루고 문장으로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며 송대 고문의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한 공이 있다. 저서에는 신당서(新唐書)・신오대사(新五代史)・모시본의(毛詩本義)・집고록(集古錄)・귀전록(歸田錄)・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문충집(文忠集)・거사집(居士集)・육일시화(六一詩話)・육일사(六一詞) 등이 있다. <宋史 卷319><宋元學案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