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달지유혈 불감질원[怒而撻之流血 不敢疾怨] 부모님이 성을 내어 자식을 매질해서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함.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부모님께서 과실을 저지르시면 기운을 낮추고 얼굴색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말린다. 간하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공경하고 효도하여 부모님이 기뻐하시면 다시 간한다. 만약 부모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더라도 부모로 하여금 고을에서 죄를 짓게 하느니 차라리 끊임없이 말리는 것이 낫다. 부모님께서 노하여 나를 매질하여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해서는 아니 되며 계속해서 공경하고 효도해야 한다.[父母有過 下氣怡色 柔聲以諫 諫若不入 起敬起孝 說則復諫 不說 與其得罪於鄕黨州閭 寧孰諫 父母怒不說而撻之流血 不敢疾怨 起敬起孝]”라고 하였다.
노이무공[勞而無功] 애를 썼으나 공이 없음. 애쓴 보람이 없음. 수고만 하고 아무런 공이 없음.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공이 없다는 뜻으로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에 “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나 같은 게 아닙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나 같은 게 아닙니까?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 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 勞而無功, 身必有殃.]”라는 말이 있고, 순자(荀子) 정명편(正明篇)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번잡하고 통일됨이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만 한다. 그들은 그 이름에 유혹되고 언사에 현혹되지만 그 뜻보다 깊지를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요령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으며, 욕심을 부리지만 명성이 없다.[故愚者之言, 忽然而粗, 嘖然而不類, 誻誻然而沸. 彼誘其名, 眩其辭, 而無深於其志義者也. 故窮藉而無極, 甚勞而無功, 貪而無名.]”고 하였고, 관자(管子)의 형세편(形勢篇)에는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와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與不可, 強不能, 告不知, 謂之勞而無功.]”라는 내용이 있다.
노이불권[老而不倦]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蘧伯玉)은 “나이 50에 49세의 잘못을 알았다.[行年五十 而知四十九年之非]”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의 “거백옥이 사람을 보내 공자에게 문안드렸다.[蘧伯玉使人於孔子]”는 조목에 대한 주석에도 보이는데, 주희(朱熹)는 이것을 ‘덕에 나아가는 공부가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은 것[進德之功 老而不倦]’으로 풀이하였다. 즉 거백옥이 나이 50세에 49세 때의 잘못을 알아 해마다 고쳐 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이불사[老而不死] 늘그막에 언짢은 일이 많이 생겨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함을 이른다.
노이불사[老而不死] 늙어서도 죽지 않음.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어려서는 공손하지 못하고, 장성해서는 칭찬할 만한 일이 없고, 늙어서는 죽지 않는 것이 바로 적이다.[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석에 “‘적’은 남을 해치는 사람을 이른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무엇 하나 잘한 것 없이 오래 사는 것은 그저 인륜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힐 뿐이니, 이런 사람은 바로 적일 뿐이다.[賊者 害人之名 以其自幼至老 無一善狀而久生於世 徒足以敗常亂俗 則是賊而已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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