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리선생[甪里先生] 상산사호의 하나인 주술(周術). 각리선생(角里先生)이라고도 한다.
녹린[綠鱗] 고기비늘처럼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형용하는 시어(詩語)이다.
녹림[綠林] 녹림은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전한(前漢) 말엽 왕망(王莽) 때 반도(叛徒)들이 이 산에 들어가 도둑질하며 관군(官軍)에 대항했으므로 전하여 이 산 이름이 도적의 별칭이 되었다.
녹림[綠林] 녹림은 중국(中國) 형주(荊州) 당양현(當陽縣)에 있는 산 이름이다. 후한서(後漢書) 권11 유현열전(劉玄列傳)에 “왕망(王莽)의 말기에 남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모두 야택(夜澤)에 들어가 수조(水藻)를 파서 먹거나 서로 도둑질을 하다가 나중에는 여러 범법자들이 합세하여 녹림산(綠林山)으로 들어갔는데, 수개 월 동안에 군중이 7・8천 명에 달하였다.” 하였다. 그래서 후세에 도적을 녹림당(綠林黨)이라 칭한 것이다. <後漢書 劉玄傳>
녹림[綠林] 녹림은 한나라 말기 왕망(王莽)이 집권했을 때 신시(新市) 사람 왕광(王匡)・왕봉(王鳳) 등이 형주(荊州)의 기민(饑民)을 거느리고 봉기하여 호북성 당양현(當陽縣) 동북에 근거지로 삼았던 녹림산(綠林山)을 말하는데, 이 군대를 녹림군(綠林軍)이라고 한다. <漢書 卷99 王莽列傳>
녹림[綠林] 푸른 숲이란 뜻으로, 도둑 떼의 소굴을 일컫는 말의 고사성어이다. 전한(前漢) 말기에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이 왕위를 찬탈하여 천자(天子)가 되고, 국호를 신(新)이라 고친 다음 모든 제도를 개혁하였다. 그러나 개혁정책이 너무 급격하여 혼란만 빚었고, 백성은 극도의 생활고에 빠져 새 왕조를 원망하게 되었다. 왕광(王匡)・왕봉(王鳳) 일당이 이들 난민을 모아 녹림산(綠林山)에서 반기를 들었는데, 그 무리가 수백 명이었다. 그러자 관군에 쫓긴 마무(馬武)・왕상(王常)・성단(成丹) 등이 몰려와 함께 녹림산에 근거지를 차리고 마을을 공략하였는데, 이들의 세력이 몇 달 사이에 8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 후 이들은 형주자사(荊州刺使)가 이끈 관군 2만명과 싸워 크게 이기고, 세력이 커져 5만명이 되었을 때 유수(劉秀:光武帝)와 유현(劉玄)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들과 합류하여 왕망을 위협하는 큰 세력을 이루었다. 녹림은 원래 산 이름이지만, 왕광의 무리가 굶주린 백성을 모아 이 곳을 근거지로 도둑질을 하였기 때문에 이 후부터 도둑의 소굴을 녹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녹림객[綠林客] 녹림호객(綠林豪客). 화적이나 도둑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녹림소취[綠林嘯聚] 녹림(綠林)은 중국 형주(荊州) 당양현(當陽縣)에 있는 산 이름인데, 전한(前漢) 말엽 신망(新莽) 때에 왕광(王匡)과 왕봉(王鳳) 등이 형주의 기민(飢民)을 모아 이 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약탈을 하며 관군에 대항한 고사에서 유래하여, 산림 속에 숨어서 정부에 반항하거나 재물을 탈취하는 산적 등의 무장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소취(嘯聚)는 도적들이 밤에 휘파람으로 신호하여 패거리를 불러 모으는 것을 말한다.
녹림적미[綠林赤眉] 녹림(綠林)은 본래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찬탈하자 이에 대항하는 반도(叛徒)들이 이 산을 근거로 왕망의 관군(官軍)에 대항했으므로 전하여 도적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적미(赤眉)는 왕망에 반대하여 낭야(琅邪)에서 봉기한 번숭(樊崇)의 군대를 가리킨다. 황우(黃虞)는 태고 시대의 황제(黃帝)와 우순(虞舜 순 임금)을 합칭한 말이다. 왕망이 한나라를 찬탈한 초기에 국가가 안정되지 못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왕망은 자신을 빗대어 ‘황제와 순 임금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태연하였고, 이어 온갖 악정을 베풀어 천하를 소란케 하였다. <史略 卷2 西漢>
녹림호객[綠林豪客] 당나라 시인 이섭(李涉)이 도적을 만났을 때에 도적의 두목이 말하기를 “정말로 이섭이 맞다면 빼앗지 않겠다. 시를 잘 짓는다는 명성을 오래전부터 듣고 있다. 시를 한 수 지어 주면 놓아 주겠다.” 하여, 이섭이 시를 지어 주고 풀려났다고 한다. 그 시에 “저녁 비 부슬부슬 내리는 강가 마을에, 녹림의 호걸이 밤손님으로 오셨네. 후일에는 서로 얼굴 피할 일 없으리라. 세상은 지금 절반이 그대 같은 사람이니.[暮雨蕭蕭江上村 綠林豪客夜相聞 他年不用相面避 世上如今半是君]”라고 하였다. 신(新)나라 때에 왕망(王莽)의 통치에 반대하는 무리가 녹림산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이후 ‘녹림’은 ‘도둑의 소굴’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녹림호객[綠林豪客] 불한당이나 화적을 듣기 좋게, 또는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왕망(王莽) 때 신시(新市) 사람 왕광(王匡)・왕봉(王鳳) 등 무뢰배 수백 명이 산에 숨어 강도를 일삼기로 그들의 별명을 녹림(綠林)이라 붙였다.
녹림호걸[綠林豪傑] 푸른 숲 속에 사는 호걸(豪傑)이라는 뜻으로, 불한당(不汗黨)이나 화적(火賊) 따위를 문자투로 꾸며 이르는 말이다. 녹림호객(綠林豪客).
녹림호걸[綠林豪傑] 산에 사는 도적을 가리킨다. 당나라 이섭(李涉)의 시 정란사숙우야객(井欄砂宿遇夜客)에 “저녁 비 부슬부슬 내리는 강가 마을에, 녹림의 호걸이 밤손님으로 오셨네. 후일에는 서로 얼굴 피할 일 없으리라, 세상은 지금 절반이 그대 같은 사람이니.[暮雨蕭蕭江上村, 綠林豪客夜相聞. 他年不用相面避, 世上如今半是君.]”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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