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伯樂)에게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말을 감정하는 법을 배운 두 사람이 함께 마구간에 가서 말을 살피게 되었다. 한 사람이 먼저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말을 지목했다. 다른 한 사람이 그 말의 뒤로 돌아가서 세 번이나 말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는데도 그 말은 뒷발질을 하지 않았다.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말이라고 감정한 사람이 자기의 감정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감정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어깨가 굽었고, 앞무릎은 부어 있습니다. 원래 뒷발질 잘하는 말은 그 체중을 앞발에 싣고 뒷발을 드는 법인데, 이 말은 앞발이 부어 뒷발을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뒷발질 잘하는 말 감정에는 뛰어난 것 같으나 무릎을 살필 줄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매사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어 가는 도리가 있고, 정세에는 불리한 경우가 있다. 말의 앞무릎이 부어 있으면 무거운 체중을 지탱할 수가 없다. 그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알 수 있다.
혜자(惠子)가 이르기를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이나 우리에 가두어 두면 돼지가 되고 만다.」고 하였다.
능력이 있는 사람도 불리한 정세에 놓이게 되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한비자 제23편 설림(하)>
伯樂敎二人相踶馬, 相與之簡子廐觀馬. 一人擧踶馬. 其一人擧踶馬. 其一人從後而循之, 三撫其尻而馬不踶. 此自以爲失相. 其一人曰:「子非失相也. 此其爲馬也, 踒肩而腫膝. 夫踶馬也者, 擧後而任前, 腫膝不可任也, 故後不擧. 子巧於相踶馬而拙於任腫膝.」 夫事有所必歸, 而以有所腫膝而不任, 智者之所獨知也. 惠子曰:「置猿於柙中, 則與豚同.」 故勢不便, 非所以逞能也. <韓非子 第23篇 說林(下) 01>
※ 종슬부제[腫膝不踶] 무릎이 부으면 발길질하지 못한다.
- 백락[伯樂] 춘추(春秋)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의 사람으로 이름은 손양(孫陽)이다. 말[馬]의 상(相)을 잘 보아 준마(駿馬)를 잘 감별하였다고 한다. 백락(伯樂)은 원래 별 이름으로 천마(天馬)를 관장한다. 경전석문(經典釋文:장자석문莊子釋文)에서 육덕명(陸德明)은 “성은 손(孫)이고 이름은 양(陽)으로 말을 잘 부렸다. 석씨성경(石氏星經)에 이르기를 백락(伯樂)은 하늘의 별 이름으로 천마(天馬)를 담당하는데 손양(孫陽)이 말을 잘 부렸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으로 삼았다.[姓 孫 名 陽 善馭馬 石氏星經云 伯樂 天星名 主典天馬 以孫陽善馭 故以爲名]”라고 하였다. 한편 성현영(成玄英)은 “열자(列子)에 이르기를 성은 손(孫)이고 이름은 양(陽)이며 자(字)는 백락(伯樂)이다. 진 목공(秦穆公) 때 말을 잘 다루던 사람이다.[列子云 姓孫 名陽 字伯樂 秦穆公時 善治馬人]”라고 하였다. 전국 시대 종횡가(縱橫家)인 소대(蘇代)가 순우곤(淳于髡)에게 “준마를 팔기 위해서 사흘 동안이나 시장에 내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백락이 한 번 돌아보자 하루아침에 그 말의 값이 열 배나 뛰어올랐다.”라고 말한 백락일고(伯樂一顧)의 고사가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2에 나오고, 백락이 우판(虞坂)을 지나가는데, 기기(騏驥)가 염거(鹽車) 아래 엎디었다가 백락을 보고 길게 소리를 치므로 백락은 수레에서 내려 눈물을 흘리니 기마(驥馬)는 머리를 숙여 하소연하고 다시 쳐들어 소리를 치는데 하늘 밖까지 들렸다는 고사가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4에 보인다. 또, 기북(冀北) 즉 기주(冀州) 북쪽은 양마(良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한데, 백락이 기북 지방을 한 번 지나가자 준마가 한 마리도 없이 텅 비어 버렸다는 내용이 한유(韓愈)의 송온처사부하양군서(送溫處士赴河陽軍序)에 나오고, 한창려집(韓昌黍集) 잡설4(雜說四)에 “세상에 백락이 있은 뒤라야 천리마(千里馬)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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