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선장군[樓船將軍] 누선장군은 중국 고대 군직(軍職)의 하나로, 현재의 해군 제독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복(楊僕)이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기원전 109)에 수군을 거느리고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발해만을 횡단해 왕검성(王儉城)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서 귀국하여 처형당하였다.
누선장군[樓船將軍] 장군의 명호(名號)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양복(楊僕)이 누선장군에 임명된 뒤 수군(水軍)을 이끌고 남월(南越)을 정벌하여 장량후(將梁侯)에 봉해진 고사가 있다. <漢書 卷90 酷吏傳 楊僕傳>
누선지취[漏船之醉] 주희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4 답여백공(答呂伯恭)에서 당시 송(宋)나라의 형편을 비유한 말로 “우리와 백성들의 목숨은 모두 이 물 새는 배 위에 있네. 만약 훌륭한 사공을 불러 그가 술에 빠져 있지 않다면, 급할 때 그래도 믿을 수 있을 것이네.[吾輩與百萬生靈性命盡在此漏船上 若喚得副手稍工 不至沈醉 緩急猶可恃也]”라고 하였다.
누선진사[樓船秦使] 진시황(秦始皇)이 삼신산의 불사약을 찾기 위해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데리고서 큰 배인 누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게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누선초공[漏船稍工]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4 답여백공서(答吕伯恭書)에 “우리와 백만 명 백성의 생명이 모두 물이 새는 배 위에 있으니, 만약 부수와 뱃사공을 불러와 그가 취함에는 이르지 않았다면, 급할 때 그래도 믿을 수 있을 것이네.[吾輩與百萬生靈性命盡在此漏船上 若喚得副手稍工 不至沈醉 緩急猶可恃也]”라고 하였다.
누선횡해[樓船橫海] 누선(樓船)과 횡해(橫海)는 모두 한(漢)나라 때 수군(水軍) 장군의 호칭이다. 한 무제(漢武帝) 원정(元鼎) 6년에 한열(韓說)을 횡해장군(橫海將軍)으로 삼고 남월(南越)을 정벌한 공으로 안도후(按道侯)를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건무(建武) 18년에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과 누선장군(樓船將軍) 단지(段志)를 보내어 남만(南蠻)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後漢書 卷86 南蠻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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