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가[党家] 당가는 송대(宋代)의 무신(武臣) 당진(党進)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추솔(麤率)한 부호인(富豪人)을 비유한다. 송대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도곡(陶穀)이 일찍이 태위(太尉) 당진의 가희(家姬)를 첩(妾)으로 삼았는데, 하루는 그녀에게 설수(雪水)를 취하여 차를 끓이게 하면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당 태위의 집에서는 응당 이런 풍류를 모를 것이다.”라고 하자, 그녀가 대답하기를 “저 당 태위는 추솔한 사람인데 어찌 이런 풍류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는 소금장 아래 앉아 조용히 조금씩 술을 음미하면서 미인의 고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양고미주나 마실 뿐이랍니다.[彼粗人也 安有此景 但能銷金暖帳下 淺斟低唱 飮羊羔美酒耳]”라고 하니, 도곡이 그 말에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당가[當家] 집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다. 이 집. 그 집. 집안일을 주장(主將)하여 맡게 됨. 일이 있는 바로 그 집. 또는 이 집.
당가농서군[唐家隴西郡] 당(唐) 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농서(隴西) 성기(成紀)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唐書 卷1>
당가사[黨家事] 금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장막 아래서 좋은 양고주(羊羔酒)를 마시며 즐기는 일을 말한다. 송(宋)의 도곡(陶穀)의 첩은 원래 당진(黨進)의 집 시희(侍姬)였는데, 뒤에 도곡의 첩이 되었다. 어느 날 눈이 내리자 도곡이 그 첩을 시켜 눈 녹인 물로 차를 다리라고 하면서, 당진의 집안에도 그러한 풍류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 첩이 대답하기를 “그들 녹록한 위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풍미를 알겠습니까.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다만 금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장막 아래서 술을 넌지시 부어놓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해 가며 좋은 양고주나 마시는 것이지요.”라 하여, 도곡이 부끄러운 기색을 가졌다고 한다. <宋史 卷二百六十九>
당가지화[唐家之禍]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황제에 올라 국호를 周로 바꾸는 등 발호한 재앙을 말한다.
당가타인[當街打人] 길 거리에서 남을 때림. 주자(宋子)가 포현도(包顯道)를 논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하여 길거리에서 남을 구타하여도 구원하거나 말릴 수 없다.[如人醉酒, 當街打人, 不可救勸.]”고 하였는데, 그것은 포현도가 바로 육학(陸學: 육구연陸九淵의 학파)을 주장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宋子大全隨箚 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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