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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감[唐鑑]~당강[唐羌]~당개[幢蓋]~당개[唐介]~당개녹야[堂開綠野]


당감[唐鑑]  당감은 송(宋)의 범조우(范祖禹)가 당(唐)나라 역사를 추려서 찬한 것으로 모두 24권인데, 당 고조(唐高祖)에서부터 소제(昭帝)·선제(宣帝)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한 다음 정치의 잘되고 잘못된 것을 평론하였다.

당감[唐鑑]  당 나라 태종(太宗)의 후비인 장손황후(長孫皇后)는 성품이 차분하여 태종에게 경계 말씀을 잘 올렸으므로 태종은 “나에게는 두 거울이 있으니, 하나는 장손황후요 하나는 위징(魏徵)이다.”라고 하였다.

당감[唐鑑]  당감의 자는 율생(栗生), 호는 경해(鏡海), 선화(善化) 사람이다. 청나라 때 경학가로, 주희의 격물성정(格物誠正)의 설을 추숭하고 왕수인의 설을 배격하였다. 1809년 진사가 되어 태상시경(太常寺卿)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강녕서원(江寧書院)에서 강학하였는데, 증국번(曾國藩)·왜인(倭仁)·오정동(吳廷棟)·하규진(何桂珍) 등이 수학하였다. 시호는 확신(確愼)이다.

당강[唐羌]  자는 백유(伯游)로, 일찍이 임무현(臨武縣)의 수령이 되어 당시 교주(交州) 지방에서 용안(龍眼)과 여지(荔枝)를 공물로 바치는 폐해가 심하자 화제(和帝)에게 상소하기를, 남쪽 지방에는 악충(惡蟲)과 맹수(猛獸)가 도처에 가득하여, 용안과 여지를 따서 운반하느라 백성들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면서 “이 두 물건을 대궐에 올린다고 하여 반드시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此二物升殿 未必延年益壽]”라고 하자, 화제가 그 말에 따라 공물로 받는 일을 중지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4 和帝本紀>

당개[幢蓋]  당(幢)은 간주(竿柱)를 만들어 높이 솟아나게 하여 잡색 실로 장엄하게 표치(標幟)를 만들어 군생(群生)을 지휘하고 마중(魔衆)을 억제하는 것으로서 절 앞에 세우는 것이다. 개(蓋)는 비구(比丘)들이 사용하는 입개(笠蓋 : 양산)를 이른다.

당개[幢蓋]  원래 옛날 장군이 사용하던 깃발과 일산 따위의 의장(儀仗)이다. 훗날 불교 사원에서 간주(竿柱)에 여러 색깔의 실로 장엄하게 표치(標幟)를 만들어 절 앞에 세웠다.

당개[唐介]  당개는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의 직신(直臣)으로 강릉(江陵) 태생이며, 자는 자방(子方), 시호는 질숙(質肅)이다. 당시 명망이 있던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장요좌(張堯佐)와 재상(宰相) 문언박(文彦博), 간관(諫官) 오규(吳奎)를 탄핵하였고, 신종(神宗) 희령(煕寧) 초년에 참지정사에 임명되어 누차 왕안석(王安石)과 더불어 쟁론하였다. <宋名臣言行錄 後集 卷5 唐介>

당개[唐介]  송(宋)나라 인종(仁宗)·영종(英宗)·신종(神宗) 때 강릉(江陵) 사람으로 강직하여 바른말을 잘하기로 유명하였다. 자는 자방(子方), 시호는 질숙(質肅)이다. 자(字)는 자방(子方), 시호는 질숙(質肅)이다.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재직할 당시에 재상(宰相) 문언박(文彦博) 등을 탄핵하였으며, 담주통판(潭州通判), 복주(復州)·양주(揚州)의 지주(知州)를 지냈다. 신종(神宗) 희령(煕寧) 연간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신법(新法)을 만든 왕안석(王安石)과 자주 쟁론(爭論)을 벌였다. 일찍이 황제 앞에서 문언박의 비리를 논핵하였을 때, 황제가 노하여 장차 먼 곳으로 귀양 보내려 하자, 그는 “충분(忠憤)이 북받쳐 죽음도 피하지 않을 터인데, 어찌 귀양 가는 것을 마다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宋史 卷316 唐介列傳>

당개[唐介]  장요좌(張堯佐)는 송 인종(宋仁宗)이 총애한 장 귀비(張貴妃)의 백부(伯父)이고, 문로공(文潞公)은 명재상 문언박(文彦博)의 봉호(封號)이다. 당개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재직 당시에, 재상 문언박이 무능하기만 한 장요좌를 중용하여 자기의 위치를 굳히려 한다고 비판하고, 과거의 비위(非違) 사실까지 들춰내어 탄핵하면서, 그를 재상에서 축출하고 대신 부필(富弼)을 재상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논했다가 영주 별가(英州別駕)로 쫓겨나자, 매요신(梅堯臣)과 이사중(李師中)이 시를 지어 그를 격찬하는 등 이 일로 인해 그의 직언(直言)의 명성이 천하를 진동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史 卷316 唐介傳>

당개녹야[堂開綠野]  녹야(綠野)에 당(堂)을 개설함. 당(唐)나라 배도(裴度)의 녹야당(綠野堂)이라는 별장이 낙양(洛陽)에 있었다. 배도(裴度)는 당 헌종(唐憲宗) 때의 재상(宰相)으로, 번진(藩鎭)의 반란(叛亂)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낙양(洛陽)으로 물러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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