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소종지사[唐昭宗之事] 당 소종(唐昭宗) 광화(光化) 4년(900)에 환관 유계술(劉季述)이 난을 일으켜 천자를 유폐하였다. 천복(天復) 원년(901)에 호가도두(護駕都頭) 손덕소(孫德昭)가 유계술을 죽이니, 소종이 복위하였다. 유계술이 죽은 뒤 재상 최윤(崔胤)이 주온(朱溫: 주전충朱全忠)의 군사를 빌려서 환관들을 모두 죽이고자 하였다. 그러자 환관 한전해(韓全海)가 소종을 겁박(劫迫)하여 달아나 봉상(鳳翔)에 이르러 이무정(李茂貞)에게 의탁하였다. 주온의 군사가 봉상을 포위하니 마침내 성 안에 양식이 떨어졌다. 이무정이 한전해 등 20여 명을 죽이고 화친을 청하였고, 소종은 경사(京師)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사로 돌아온 뒤에 주온은 환관 700여 명을 죽였고, 당나라의 정권은 이로부터 주온의 손에 들어갔다. <新五代史 권1>
당송총서[唐宋叢書] 명(明) 나라 사람 종인걸(鍾人傑)과 장수신(張遂辰)이 공저한 책 이름이다. 당송(唐宋) 때의 저술을 경사자집(經史子集) 별로 분류 편찬하였는데, 총 40권이다.
당송팔가[唐宋八家]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시대의 여덟 명의 저명한 문장 대가(大家). 곧 당나라의 한유(韓愈: 한퇴지韓退之) 유종원(柳宗元: 유자후柳子厚),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 구영숙歐永叔) 왕안석(王安石: 왕개보王介甫) 증공(曾鞏: 증자고曾子固) 소순(蘇洵: 소명윤蘇明允)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 소철(蘇轍: 소자유蘇子由)이다. 당송팔가(唐宋八家),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라고도 일컫는다. 이들의 글을 모은 책으로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가 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당나라의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 8명의 산문작가의 총칭이다. 한유·유종원은 육조 이후 산문의 내용이 공소(空疎)하며 화려한 사륙변려체(四六騈驪體)의 문장인 데 대하여, 진한(秦漢)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 유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간결하며 뜻의 전달을 지향하는 새로운 산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고문운동(古文運動)이다. 이 운동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두 사람의 사후에는 점차 기세가 약해졌다. 그것은 새로운 표현과 착상의 연구가 뜻의 전달성을 희박하게 하였고, 또한 도덕지향의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도학 냄새가 짙은 것이 원인이었으며, 그 반동으로 당나라 말기에서 5대에 걸쳐 육조식(六朝式) 탐미적 산문이 부활하였고, 북송(北宋)의 천성기가 되자 구양수가 한유의 문집을 규범으로 하여, 알기 쉽고 유창한 산문을 만드는 혁신운동에 앞장서, 이 운동으로부터 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 등 우수한 문학자가 배출되었다.
당송팔자[唐宋八子] 당(唐)·송(宋) 시대 고문(古文)의 대가(大家) 8명의 총칭이다. 즉, 당(唐)의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 송(宋)의 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의 8명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문학에서 혁신운동을 이끌었으며, 알기 쉽고 유창한 문학, 즉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접할 수 있는 문학을 하려고 시도하였다. 당·송 이전의 문장들이 화려하기는 하나, 공허한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들은 순수문학을 주창하였다.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 정조(正祖)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글 중에서 100여 편을 뽑아 6권 3책으로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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