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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堂奧], 당외[塘外], 당요개주[堂坳芥舟], 당요관화[唐堯觀華], 당용[當用]


당오[堂奧]  높은 경지에 이름. 순자(荀子) 대략(大略)의 주(註)에 “당오는 마루에 오른 뒤에 안방에 들어간다는 승당도오(升堂覩奧)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학문의 점진적인 발전을 뜻하는 말이다.

당오[當午]  정오(正午). 한밤중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낮까지. 정오까지.

당오전[當五錢]  1883년부터 1894년까지 주조되었던 화폐이다.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주조되었는데, 명목 가치는 1문전(文錢)이 상평통보 5배의 가치와 같았으나 실질 가치는 상평통보 2매에 불과하였다. 이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고 국내 화폐의 절하로 국제무역에 큰 손실을 초래하였다.

당외[塘外]  연못 바깥쪽.

당요[唐堯]  중국 원고(遠古) 시대 제왕인 도당씨(陶唐氏) 요(堯)를 이른다. 이름은 방훈(放勳)이다. 도(陶)에서 살다가 나중에 당(唐)으로 옮겨 살아 도당씨(陶唐氏)라고 하며, 당요(唐堯)라고도 일컫는다. 오제(五帝)의 하나인 제곡(帝嚳)의 손자로 태어났는데, 제위에 오르자 희화(羲和) 등에게 명하여 역법(曆法)을 정하였다고 한다.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하자 순(舜)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줬다.

당요[塘坳]  물 웅덩이. 작은 연못. 제방(堤防)의 움푹 패인 땅.

당요개주[堂坳芥舟]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물의 고인 것이 깊지 못하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대청의 우묵한 곳에 한 잔의 물을 부으면 지푸라기는 배처럼 띄울 수 있다. 그러나 술잔을 띄우면 가라앉으니,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且夫水之積也不厚 則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요관화[唐堯觀華]  당요(唐堯)가 화(華) 땅을 유람함. 당요(唐堯)가 화(華) 지방의 민심을 살펴보러 나갔을 때 그곳의 관리가 당요에게 오래 살고 재물이 많고 아들을 많이 두라는 것으로 축복하자, 대답하기를 “사내아이를 많이 두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유하게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될 일이 많아지니 이 세 가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덕을 기르는 방법이 아니다.[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라고 하였다고 한다. <莊子 天地>

당요저덕 소부세이[唐堯著德 巢父洗耳]  당요(唐堯)가 덕(德)을 드러냄에 소부(巢父)가 귀를 씻었다는 뜻으로, 요(堯)임금 때의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소부(巢父)가 영수(潁水) 부근에 살았는데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추한 소리를 들었다 하여 영수에서 귀를 씻었으며, 소부는 소에게 영수의 냇물을 먹이려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말을 듣고는 물이 더러워졌다 하여 소를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인 바, 성군(聖君)이 정치를 잘하여도 끝내 벼슬하지 않는 은사(隱士)가 있음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동한기(東漢紀)에 “황제는 그가 누워 있는 곳으로 나아가 엄광(嚴光)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아, 자릉(子陵)아. 서로 도와 정치를 할 수 없는가?’라고 하니, 엄광(嚴光)이 눈을 부릅뜨고 한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말하기를 ‘옛날에 당요(唐堯)가 덕(德)을 드러냄에 소부(巢父)가 귀를 씻었으니, 선비는 본래 뜻이 있는 법입니다. 어찌 내버려 두지 않고 서로 핍박함에 이르신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帝卽其臥所, 撫光腹曰: 咄咄子陵 不可相助爲理耶. 光乃張目熟視曰: 昔唐堯著德, 巢父洗耳. 士故有志, 何至相迫乎?]”고 한 데서 보인다.

당용[當用]  당장 필요한 일에 씀. 당장의 소용(所用)에 씀. 마땅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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