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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저[撞著]~당저[當宁]~당저[唐雎]~당적[黨籍]~당전연[堂前燕]


당저[撞著]  맞부딪치다. 불의의 사태를 만나다.

당저[當宁]  당저는 현재의 임금이란 뜻으로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의 “천자는 저를 당하여 선다.[天子當宁而立.]”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저(宁)는 문병(門屛)의 사이로 금상(今上)과 같은 말이다.

당저[當宁]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천자는 당저(當宁)하여 선다.[天子當宁而立]”라 하였다. 저(宁)는 임금이 조회를 보기 위하여 멈추어 서는 곳이니, 당저(當宁)는 곧 임금의 임조청정(臨朝聽政)하는 곳을 가리킨다.

당저[當宁]  천자(天子)의 자리를 이르는데, 후대에는 금상(今上)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예기(禮記) 곡예 하(曲禮下)에 “천자(天子)가 저(宁: 문 가리개)를 마주하여 서 있으면 제공(諸公)은 동향(東向)을 하고 제후(諸侯)는 서향(西向)하여 뵙는 것을 조(朝)라 한다.[天子 當宁而立 諸公東面 諸侯西面 曰朝]”라고 보이는데, 소(疏)에 “저(宁)는 이아(爾雅)에 ‘문병(門屛)의 사이를 저(宁)라 이르니, 군주(君主)가 조회 볼 적에 기다리며 서 있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제후(諸侯)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기 때문에 ‘저(宁)를 마주하여 서 있다.’고 말한 것이다.[宁者 爾雅云 門屛之間 謂之宁 人君視朝所宁立處 蓋竚立以待諸侯之至 故云當宁而立也]”라고 하였다.

당저[唐雎]  전국(戰國) 때 위(魏)나라 사람. 흔히 당저(唐且)로 더 많이 알려졌다.

당저[唐且]  ‘且’는 ‘雎’로도 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언릉군(鄢陵君)의 신하이다. 뒤에 상경(上卿)에 봉해졌다. 사기(史記)에는 당저(唐雎)로 되어 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에는 두 사람의 당저(唐且)가 있었다. 하나는 위 공자(魏 公子)이고, 하나는 진 소왕(秦昭王)을 설득하여 위(魏)나라를 구한 사람이다. <戰國策 魏策>·<史記 魏世家>

당적[黨籍]  당적은 당고(黨錮)의 화에 걸린 선비의 명부로, 정이천(程伊川)은 원우(元祐)의 당적에, 주자(朱子)는 위학당(僞學黨)의 당적에 올라 곤경을 겪었다.

당전[唐典]  당(唐)나라의 두우(杜佑)가 편찬한 통전(通典)을 가리킨다.

당전연[堂前燕]  제비는 사람의 집에 둥지를 짓고 살면서 어미와 새끼가 서로 좋아하며 편안하게만 여겨,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불이 나서 동량(棟梁)이 곧 탈 지경에 이르러도 화(禍)가 곧 미치게 될 것을 알지 못하고 서로 좋아하기만 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원대한 견식이 없음으로 인하여 화해(禍害)를 입게 되는 것을 비유한다. <孔叢子 論勢>

당전연[堂前燕]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의 시 오의항(烏衣巷)에 “주작교 가에 들풀이 꽃피었는데, 오의항 입구에는 석양이 비꼈네. 옛날에 왕씨 사씨 사당 앞을 날던 제비, 심상한 백성 집에 날아드네.[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라고 하였다. 오의(烏衣)는 제비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오의항(烏衣巷)은 진(晉)나라 때 귀족인 왕씨(王氏)와 사씨(謝氏)들이 살던 동네에 제비가 많다 하여 오의항(烏衣巷)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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