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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 오면 / 도종환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 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 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 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 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다시 당신을 만나야 합니다.

<유월이 오면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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