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의재봉선실소[賈誼再逢宣室召] 왕의 부름을 다시 받음을 말한다. 한(漢)의 가의(賈誼)가 나이 20 전에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고 박사(博士)를 거쳐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되었다가 주발(周勃)·관영(灌嬰)등의 모략에 의하여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밀려났는데 그 후 문제는 가의가 잊혀지지 않아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가의가 다시 들어와 문제를 뵈올 때 문제는 막 미앙궁(未央宮)앞의 정실(正室)인 선실(宣室)에서 제육[釐]을 받고 있었다. <漢書 賈誼傳>
가의적장사[賈誼謫長沙] 한 문제(漢文帝) 때 가의가 약관에 태중태부(太中太夫)가 되었다가 군신(群臣)들의 시기를 받아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된 것을 말한다. <漢書 卷四十八 賈誼傳>
가의초천[賈誼超遷] 가의는 한(漢)나라 때의 재사(才士)로서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여 문제(文帝)의 총애를 받았으며, 약관(弱冠)에 역대 최연소 박사가 되고 다시 1년 만에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가의치안책[賈誼治安策] 가의(賈誼)는 서한(西漢) 낙양(洛陽) 사람으로 문제(文帝) 때 박사(博士)와 태중대부(太中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치안책(治安策)은 당시 동성(同姓) 제후(諸侯)들이 강성하여 황제(皇帝)의 권력이 약화된 폐단을 지적한 내용으로, 문제(文帝)는 가의(賈誼)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제후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치안(治安)은 나라를 잘 다스려 편안하게 함을 이른다. 가의(賈誼)가 문제(文帝)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 가운데 “옛날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는 나라를 소유하여 천여 년 치안(治安)을 잘하였다.”라고 하였다.
가의치안책[賈誼治安策] 가의는 한 문제(漢文帝) 때 하남 태수(河南太守) 오공(吳公)의 천거로 20여 세에 등용된 지 1년 만에 파격적으로 승진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에까지 올랐다. 그는 문제에게 변방의 소란 및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등 시국(時局)을 구제하기 위해 치안책(治安策)을 올리면서 “일의 형세를 살피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이다.[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전제한 다음, 정치의 득실을 일일이 예를 들어 진달(進達)하였다.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 <漢書 卷48 賈誼傳>
가의통곡[賈誼痛哭]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서한(西漢) 낙양(洛陽) 사람이다. 18세 때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능히 외우고 문장을 잘 지어 재사(才士)로 이름났다. 하남군수(河南郡守) 오공(吳公)이 한(漢) 문제(文帝)에게 천거하여 20여 세에 등용되어 박사(博士)가 되었고, 곧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승진하여 정삭(正朔)을 바꾸고 예악(禮樂)을 일으킬 것을 건의하였다. 그는 문제에게 변방의 소란 및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등 시국(時局)을 구제하기 위해 비통한 심정으로 치안책(治安策)을 올리면서 “삼가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건대, 통곡할 만한 일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일이 여섯 가지입니다.[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전제한 뒤에 하나씩 설명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48 賈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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