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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구경운[谷口耕雲]~곡기읍련[哭岐泣練]~곡념[曲念]


곡구거[谷口去]  숨은 선비. 서한(西漢) 정박(鄭璞)은 자가 자진(子眞)인데 성제 때에 외척대신(外戚大臣) 왕봉(王鳳)이 예의를 다해 초빙해도 응하지 않고 곡구(谷口)에서 살면서 호를 곡구자진(谷口子眞)이라고 했다 한다. <漢書 卷七十二 高士傳中>

곡구경운[谷口耕雲]  농사지으며 은거함을 이른다. 한(漢)나라 정박(鄭樸)의 호는 자진(子眞)인데, 성제(成帝) 때 대장군 왕봉(王鳳)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은 채 곡구(谷口)에 집을 짓고 경작하면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高士傳>

곡구노자[谷口老子]  곡구(谷口)에 집을 짓고서 묵수(黙守)하며 수도(修道)만 했던 한(漢) 나라 정자진(鄭子眞)을 말한다. <漢書 卷72>

곡구사경서[谷口事耕鋤]  서한(西漢) 말엽에 고사(高士) 정자진(鄭子眞)이 지조를 굽히지 않고 곡구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 이름이 경사(京師)를 진동하였다 한다. <法言 問神>

곡구옹[谷口翁]  곡구는 한(漢)나라 정박(鄭樸)의 호이다. 성제(成帝) 때 대장군 왕봉(王鳳)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은 채 곡구에 집을 짓고 살면서 곡구자진(谷口子眞)이라고 호를 지은 뒤 수묵(守默)하며 수도(修道)하였다. <漢書 卷72 王貢兩龔鮑傳>

곡구요[谷口謠]  한(漢) 나라 고사(高士) 정자진(鄭子眞)이 곡구현(谷口縣)에 집을 짓고 수도하면서 지은 무언(無言)의 노래를 이른다.

곡구자진[谷口子眞]  한(漢) 나라 때의 은사 정자진(鄭子眞)은 곡구에 살면서 수도(修道)에 전심하여, 일찍이 대장군(大將軍) 왕봉(王鳳)의 예빙(禮聘)을 받고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漢書 卷七十二>

곡구자진[谷口子眞]  한나라 정박(鄭樸)의 자가 자진(子眞)인데, 성제(成帝) 때에 외척 대장군 왕봉(王鳳)이 예의를 다해 초빙해도 응하지 않고 곡구에서 살면서 호를 곡구자진(谷口子眞)이라고 했다 한다. <高士傳 卷中 鄭樸>

곡구정자진[谷口鄭子眞]  곡구는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지명이고, 자진(子眞)은 정박(鄭朴)의 자(字)이다. 정자진이 곡구에 살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암석 아래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는데, 이름이 경사(京師)에 진동하였다. <法言 問神>

곡국[曲局]  머리카락이 구부러져 어지럽게 말린 모양이다. 시경(詩經) 채록(釆綠)에 “나의 머리카락 헝클어졌으니, 잠깐 돌아가 머리 감으리라.[予髮曲局 薄言歸沐]”라고 하였다.

곡궁[哭窮]  진(晉) 나라 완적(阮籍)이 나가 놀 때 수레 가는 대로 길을 가다가 길이 끝나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다.

곡궤[曲机]  곡궤는 꼬불꼬불 기괴(奇怪)하게 생긴 나무로 만든 안석을 가리키는데, 유종원(柳宗元)이 일찍이 굽은 물건은 모두 부정한 것이라 하여 참곡궤문(斬曲机文)을 지었다. <柳河東集 卷18>

곡궤주[曲几誅]  글을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우회해서 쓴다는 평판을 말한다. 곡궤(曲几)는 구불구불 좋지 못한 목재로 만든 다궤(茶几)를 말한 것으로 유종원(柳宗元)의 참곡궤문(斬曲几文)에 “황후가 심은 물건은 무엇보다 곧아야 한다. 그리하여야 성주(聖主)가 그것을 가지고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皇后植物 所貴乎直 聖主取焉 以建家國]”이라고 하였다.

곡기읍련[哭岐泣練]  근본은 같지만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는 것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곡념[曲念]  알뜰히 생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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