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公子] 선진시대(先秦時代)에 공자(公子)라는 호칭은 제후의 아들을 범칭(泛稱)하는 것이나, 시경(詩經) 주남(周南) 인지지(麟之趾)의 공자(公子)는 문왕(文王)의 아들 혹은 자손을 지칭하는 말이다.
공자[公子] 세자(世子)가 아닌 서자(庶子)를 이른다.
공자[公子] 제후의 아들은 공자(公子)라 칭하고, 공자의 아들은 공손(公孫)이라 칭한다. 공손의 아들은 다시 공손이라 칭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조부(祖父)의 자(字)를 씨(氏)로 삼는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진한(秦漢) 시대의 서책 가운데에서 공자에 관한 일사(逸事)와 유문(遺文)을 채록한 것으로, 삼국시대 위(魏)나라 왕숙(王肅)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모두 27권이었는데, 당나라 때 망실되어 현재 1권, 44편이 남아 있다.
공자개신후[公子皆信厚] 시경(詩經) 주남(周南) 린지지(麟之趾)를 두고 한 말이다. 문왕(文王)과 후비(后妃)가 덕을 닦아 자손과 종족이 모두 선(善)에 교화되었음을 읊은 시이다. 모서(毛序)에 “인지지(麟之趾)는 관저(關雎)의 효응(效應)이다.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면 천하에 예가 아닌 것을 범하는 일이 없어 비록 쇠락한 세상의 공자(公子)일지라도 모두 신실(信實)하고 인후(仁厚)하여 인지(麟趾)의 때와 같게 된다는 것이다.[麟之趾 關雎之應也 關雎之化行 則天下無犯非禮 雖衰世之公子皆信厚 如麟趾之時也]”라고 하였다.
공자거이[孔子居夷] 공자가 일찍이 구이(九夷)에 가서 살려고 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누추한 곳인데, 어떻게 살겠습니까?[陋如之何]”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가 살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구이는 아홉 종족(宗族)이 살고 있는 동이(東夷)를 가리킨다.
공자고금[孔子鼓琴] 공자의 거문고 연주란 뜻으로 장자(莊子) 어부(漁夫)에 “공자가 행단 가에 앉자, 제자들은 책을 읽고, 공자는 노래부르며 거문고를 연주하였다.[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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