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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견귀천[交情見貴賤], 교정내견[交情乃見], 교정상반복[交情常反覆], 교정진물[矯情鎮物] 


교정감예[交情甘醴]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군자(君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고, 소인(小人)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한데, 군자는 담담함으로써 친밀해지고 소인은 달콤함으로써 사귐이 끊어진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교정견귀천[交情見貴賤]  사람들의 교제하는 정이 반복무상(反覆無常)하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 적공(翟公)이 높은 벼슬을 할 때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파직당하자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문 앞이 한산하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복직된 뒤에 빈객들이 서로 앞다투어 찾아왔다. 이에 대문에 큰 글씨로 “한번 죽고 한번 사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을 알겠고, 한번 가난해지고 한번 부자가 되는 데에서 교제하는 태도를 알겠으며, 한번 귀해지고 한번 천해지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이 드러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이고는 손님을 일체 사절하였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史論>

교정교투칠[交情膠投漆]  교분이 아주 깊었다는 뜻이다. 아교[膠]를 칠(漆) 속에 넣으면 딱 달라붙으므로, 아교와 칠은 정이 서로 깊은 것을 표현하거나 융통성이 없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교정내견[交情乃見]  한(漢) 나라 때 책공(翟公)이 처음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는 빈객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찾아왔는데, 그가 파면됨에 미쳐서는 빈객이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아서, 문밖에 새그물을 칠 정도로 적적했다. 뒤에 다시 정위에 임명되자, 빈객들이 예전처럼 서로 앞을 다투어 찾아오므로, 인정의 반복무상함에 분개하여 자기 집 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사는 데서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 번 가난하고 부한 데서 사귀는 태도를 알 수 있으며, 한 번 귀하고 천한 데서 사귀는 정이 바로 드러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교정상반복[交情常反覆]  사람들의 교제하는 정이 반복무상(反覆無常)하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 적공(翟公)이 높은 벼슬을 할 때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파직당하자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문 앞이 한산하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복직된 뒤에 빈객들이 서로 앞다투어 찾아왔다. 이에 대문에 큰 글씨로 “한번 죽고 한번 사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을 알겠고, 한번 가난해지고 한번 부자가 되는 데에서 교제하는 태도를 알겠으며, 한번 귀해지고 한번 천해지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이 드러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이고는 손님을 일체 사절하였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史論>

교정진물[矯情鎮物]  감정을 억제하여 사물을 태연하게 대함. 사안(謝安)은 동진(東晉) 때 양하(陽夏) 사람으로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당시 북방에서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남침하자 정토대도독에 임명되었는데, 그의 조카 사현(謝玄)의 승전 보고를 받고도 태연히 바둑두기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갈 때 기뻐하여 나막신의 굽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이처럼 교정진물(矯情鎭物)했다고 한다. 진서(晉書) 권79 사안열전(謝安列傳)에 “당시 부견(苻堅)이 강성하여 국경이 위태로워지고 여러 장수들이 연이어 패퇴하자, 사안(謝安)은 동생 사석(謝石)과 조카 사현(謝玄) 등을 보내 기회를 틈타 정벌하게 했고,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공로로 사안은 위장군(衛將軍)과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임명되고, 건창현공(建昌縣公)에 봉해졌다. 이후 부견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회비(淮肥)에 진을 치자, 수도는 공포에 휩싸였고, 사안은 더하여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으로 임명되었다. 사현이 들어와 계책을 물으니 사안은 태연하게 두려운 기색이 없이 답하기를 ‘이미 별도의 생각이 있다’라고만 하며 고요하기만 하였다. 사현이 감히 다시 묻지를 못하고 이에 장현(張玄)에게 명하여 재차 묻도록 하였다. 사안은 수레를 몰아 별장으로 나가자 한 뒤 친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사현과 더불어 내기 바둑을 두었다. 사안은 항상 바둑실력이 사현보다 못하였는데 이날만은 사현은 불안하여 적수(敵手)에 두어 이기지 못하였다. 사안은 생질인 양담(羊曇)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별방을 너에게 주마’라고 하였다. 사안은 노닐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와서는 장수들에게 지시한 뒤 각자 맡은 바를 당부하였다. 사현 등이 이미 부견을 격파하여 보고서가 다다랐는데도 사안은 손님과 마주하여 바둑을 두었고, 보고서에 이미 이겼다는 것을 보고도 전령을 침상 곁에 세워둔 채 아무런 기뻐하는 기색이 없이 이전처럼 바둑을 두었다. 손님이 묻자 천천히 답하기를 ‘우리 애들이 마침내 적을 격파하였다는군요.’라고 하였다. 바둑을 파한 뒤 안으로 들어와 문지방을 넘는데 마음속으로 너무 기뻐서 신발굽이 꺾어지는지도 깨닫지 못했으니 그 감정을 억제하여 사물을 태연하게 대함이 이와 같았다.[時苻堅強盛, 疆場多虞, 諸將敗退相繼. 安遣弟石及兄子玄等應機征討, 所在剋捷. 拜衛將軍·開府儀同三司, 封建昌縣公. 堅後率眾, 號百萬, 次于淮肥, 京師震恐. 加安征討大都督. 玄入問計, 安夷然無懼色, 答曰: ‘已別有旨.’ 既而寂然. 玄不敢復言, 乃令張玄重請. 安遂命駕出山墅, 親朋畢集, 方與玄圍棋賭別墅. 安常棋劣於於玄, 是日懼, 便為敵手而又不勝. 安顧謂其甥羊曇曰: ‘以墅乞汝.’ 安遂游涉, 至夜乃還, 指授將帥, 各當其任. 玄等既破堅, 有驛書至, 安方對客圍棋, 看書既竟, 便攝放床上, 了無喜色, 棋如故. 客問之, 徐答云: ‘小兒輩遂已破賊.’ 既罷, 還內, 過戶限, 心喜甚, 不覺屐齒之折, 其矯情鎮物如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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