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구루단[句漏丹]~구루동장[句漏銅章]~구루비가[岣嶁碑歌]


구루단[句漏丹]  불로장생하는 금단(金丹)의 제조법을 말한다. 구루산은 도서(道書)에서 말하는 제22번째의 동천(洞天)으로,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금단을 만들며 수도한 곳이다.

구루단사협치천[句漏丹砂愜稚川]  치천은 진(晉) 나라 갈홍(葛洪)의 자(字)이고, 단사는 단약(丹藥)의 재료인데, 갈홍이 단사를 얻어 연단(鍊丹)할 목적으로 구루 영(句漏令)을 자원했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72 葛洪傳>

구루동장[句漏銅章]  진(晉) 나라 갈홍(葛洪)이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구루 영(句漏令)을 자청해 나가서 연단(鍊丹)을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72 葛洪傳>

구루령[句漏令]  구루는 한대(漢代)부터 교지군(交趾郡)에 두었던 현(縣) 이름이다. 진(晉)나라 때 갈홍(葛洪)이 연단(鍊丹)을 통해 장생(長生)하려고 교지에 단사(丹砂)가 난다는 소문을 듣고 구루 현령이 되기를 자청하였다. 뒤에 자질(子姪)들을 거느리고 나부산(羅浮山)에 머무르면서 연단술(鍊丹術)을 통하여 선인이 되었다고 한다. <晉書 卷72 葛洪列傳>

구루령[句漏令]  진(晉)나라 때의 학자이며 도사인 갈홍(葛洪)을 말한다. 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열후(列侯) 바로 아래 작위인 관내후(關內侯)를 받았으나, 노령을 이유로 사퇴하고 베트남의 북방 경계인 교지구루(交趾句漏)의 영(令) 자리를 지원하여 임지로 부임하던 중, 광주 자사(廣州刺史)의 권유로 나부산(羅浮山)에 들어가 저술과 연단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72 葛洪列傳>

구루만구[甌簍滿篝]  사기(史記) 골계전(滑稽傳)에 “농민들이 ‘높은 밭의 수확은 상자에 가득 차고 낮은 논의 수확은 수레에 가득 차기를[甌簍滿篝 汚邪滿車]’ 기원했다.” 하였다.

구루비[岣嶁碑]  구루는 형산(衡山)의 주봉(主峯)이다. 이곳에 우왕(禹王)의 공적을 새긴 바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탁본만이 전해진다.

구루비[岣嶁碑]  하우(夏禹)가 치수(治水)할 때 쓴 것인데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으로서 우비(禹碑)라고도 불린다. 형산현(衡山縣)의 운밀봉(雲密峰)에 있으며 보존된 것이 77자인데, 근대 사람들은 명(明) 나라 양신(楊愼)의 위조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구루(岣嶁)는 형산(衡山)의 별칭이다.

구루비[岣嶁碑]  호남성(湖南省) 형산현(衡山縣) 운밀봉(云密峯)에 있던 주문(籒文)으로 쓰인 비석으로 구루비(岣嶁碑) 또는 우비(禹碑)라고도 하는데,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할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구루산은 형산(衡山)의 다른 이름이다.

구루비가[岣嶁碑歌]  구루비에 대한 노래이다. 구루비는 중국 고대 하우씨(夏禹氏)가 9년 홍수를 다스릴 때에 썼던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이다. 일설에는 우비(禹碑)라고도 한다. 중국 형산현(衡山縣) 운밀봉(雲密峯)에 있는데, 남은 글자가 77자라 한다. 근세에 와서 명(明) 나라 양신(楊愼)의 위조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類選 十卷下 詩文篇 論詩門>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