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보[國史補] 당나라 이조(李肇)가 찬한 것으로, 3권이다. 당나라 개원(開元)에서 장경(長慶) 연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잡사(雜事)를 기록한 것이다.
국사보지[國士報之] 진(晋) 나라 예양(豫讓)이 처음에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를 섬기다가 지백(智伯)이 그 두 집을 멸하자 예양(豫讓)이 다시 지백을 섬겼더니 뒤에 조양자(趙讓子)가 지백을 멸하자 예양이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조양자를 죽이려고 갖은 방법을 하다가 양자에게 잡혔다. 양자는 말하기를 “네가 범씨・중행씨를 죽인 지백을 섬기더니 왜 나한테는 원수를 갚으려 하는가.” 하니 예양은 답하기를 “범씨・중행씨는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도 보통사람으로 보답하였고,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도 국사로 보답하는 것이다.[智伯以國士遇臣 臣故國士報之]”라고 하였다.
국사시검[國奢示儉]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 “나라에 도가 없으면 군자는 완비된 예를 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니, 나라가 사치하면 검소한 것을 보이고, 나라가 검소하면 예를 갖추어 행하는 것을 보인다.[國無道 君子恥盈禮焉 國奢則示之以儉 國儉則示之以禮]”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나온다.
국사암[國師巖] 전라도 영암의 월출산 아래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신라 진덕왕(眞德王) 말년에 영암의 성기산(聖起山) 벽촌 처녀 최씨(崔氏)가 겨울철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다 푸른 오이를 건져 먹은 뒤 배가 불러 아기를 낳았다. 최씨는 갓난아기를 대나무 숲에 버렸는데 비둘기들이 날개로 감싸 보호하자 신기하게 여겨 다시 아기를 거두어 길렀다. 그 아기가 성장하여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되었다. 도선국사가 버려졌던 마을 숲은 구림촌(鳩林村)이고, 아기를 버린 바위가 바로 국사암(國師巖)이다. <白軒集 卷45 月出山道岬寺詵國師碑銘>
국사우지 국사보지[國士遇之國士報之] 국사로 대우하면 국사로 갚는다. 같은 대접을 해도 그 정성의 경중에 따라 보답하는 정도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국사(國士)는 나라에서 최고로 꼽히는 가장 우수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전국 시대 진(晉)나라의 자객 예양(豫讓)이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으려다 실패하여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음을 당할 적에 “내가 예전에 섬겼던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는 나를 중인(衆人)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중인으로 대접하는 것이고, 지백은 나를 국사로 예우했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 국사로서 보답하려는 것이다.[智伯以國士遇臣 臣故國士報之]”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국사증진[國士甑塵] 국사는 후한(後漢) 때의 은사 범염(范冉)으로 자는 사운(史雲)이다. 일찍이 내무장(萊蕪長)으로 부름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는 벼슬길에도 나가지 않고 워낙 청렴하게 지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시루 속에 먼지가 쌓인 범사운이요, 솥 안에 물고기가 사는 범 내무로다.[甑中生塵范史雲 釜中生魚范萊蕪]”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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