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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소[宮沼]~궁송[宮松]~궁수[弓手]~궁수가간서[窮愁可看書]


궁소[宮沼]  궁소는 궁원(宮苑) 안에 있는 못을 이르는데,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봉황과 기린은 교야(郊野)에 노닐고, 거북과 용은 궁소에서 노닌다.[鳳凰麒麟皆在郊棷, 龜龍在宮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궁송[宮松]  진 시황(秦始皇)이 태산(泰山)에 올라가 봉선(封禪)할 적에 폭풍우(暴風雨)가 몰아치자 다섯 그루의 소나무 밑에서 이를 피하였으므로 뒤에 이 소나무들을 다섯 대부(大夫)로 봉(封)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六 秦始皇本紀>

궁수[窮愁]  궁핍(窮乏)을 겪는 근심. 곤궁하여 생기는 근심. 곤궁하고 비참함 속에 시름으로 지내는 생활.

궁수[窮愁]  곤궁한 시름이란, 전국 시대 유세사(遊說士)였던 우경(虞卿)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우경이 일찍이 조(趙)나라의 재상이 되었다가, 친구인 위제(魏齊)의 일로 인하여 상인(相印)을 내던지고 위제와 함께 양(梁)으로 가서 곤궁하게 지내면서 이른바 우씨춘추(虞氏春秋)라는 책을 저술했던바, 태사공(太史公)은 그를 평론하기를 “우경은 곤궁한 시름이 아니었다면 또한 글을 저술해서 스스로 후세에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라고 하였다. <史記 卷76 虞卿列傳>

궁수[弓手]  순라(巡邏) 등의 역할을 맡았던 송대(宋代) 이역(吏役)의 하나이다. 궁전수(弓箭手)라고도 한다. 송초(宋初)에는 허다히 부호(富戶)에서 차출해서 충당하였고, 현위(縣尉)에 소속되어 순라(巡邏)와 포획(捕獲)하는 일을 맡게 하였는데, 신종(神宗) 때에는 궁전수(弓箭手)를 차역(差役)에서 고역(雇役)으로 바꾸었다.

궁수[弓手]  사수(射手)이다. 송대(宋代) 지방 관부의 말단 직무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을 모집하여 기장(耆長), 장정(壯丁)과 함께 치안을 담당하고 도적을 체포하였다. <宋史 季陵列傳>

궁수가간서[窮愁可看書]  전국 시대 유세사(游說士) 우경(虞卿)이 일찍이 조(趙)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가, 친구인 위제(魏齊)의 일로 인하여 상인(相印)을 내던지고 위제와 함께 양(梁)으로 가서 곤궁하게 지내면서 이른바 우씨춘추(虞氏春秋)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태사공(太史公)이 그를 평론하여 말하기를 “우경은 역시 곤궁한 시름이 아니었다면 글을 저술해서 스스로 후세에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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