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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수벽수[奎宿壁宿]~규수직시[虯鬚直視]~규수호미[虯鬚虎眉]


규소백[糾小白]  규(糾)와 소백(小白). 규(糾)는 춘추 시대 제 양공(齊襄公)의 아우이고, 소백은 제 환공(齊桓公)의 이름인데, 규의 아우라는 설과 양공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황음무도한 양공을 피해 두 사람 모두 국외에 망명해 있다가,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양공을 시해하고 혼자 즉위했다가 살해당하자, 각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왕위 쟁탈전을 벌인 끝에, 소백이 승리하여 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규수[虯鬚]  규수는 마치 규룡(虯龍)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긴 수염을 말하는데, 흔히 무용(武勇)이 뛰어난 장수를 가리킨다. 위지(魏志) 최염전(崔琰傳)에 의하면 “규룡의 수염에 똑바로 보는 품새는 마치 성난 바가 있는 것 같았다.[虯鬚直視 若有所瞋]”라고 하였고, 오대사(五代史) 황보우열전(皇甫遇列傳)에 의하면 “우는 용력이 있어, 규룡의 수염에 활을 잘 쏘았다.[遇有勇力 虯髥善射]”라고 하였다.

규수[圭首]  비석의 비스듬하게 뾰족한 머리 부분을 말한다.

규수[閨秀]  학문, 재능이 뛰어난 여성을 이른다.

규수[奎宿]  28수(二十八宿)의 15째의 별자리. 문운(文運)과 문장(文章)을 관장한다고 한다. 16개의 별로 이루어졌는데 굴곡이 문자 획과 비슷해 문운(文運)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효경(孝經) 원신계(援神契)에 “규성은 문장(文章)을 주관한다.”라 하였다.

규수벽수[奎宿壁宿]  이십팔수(二十八宿)에 속한 별자리로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여겼다.

규수석[圭首石]  규수(圭首)는 비석의 형태를 나타내는 용어로, 비석의 양쪽 모서리를 각이 지도록 만든 것이다.

규수직시[虯鬚直視]  최염(崔琰)은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계규(季珪)이다. 한나라의 학자 정현(鄭玄)의 문하생이요, 처음에는 원소(袁紹)의 가신이 되었다가 조조(曹操)와의 전투에 자신의 생각이 채택되지 않자 물러나 은거하였다. 이후 조조의 부름을 받고 조조의 관리가 되어 상서(尙書)로 승진한 후 위나라 조비(曹丕)의 태자 책봉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조조가 위왕(魏王)이 된 후, 최염이 천거한 양훈(楊訓)의 상주문을 바쳤다. 그런데 그 글에 포함된 최염의 비평에 대하여 참언하는 사람이 있어서 조조의 미움을 받아 투옥되었고, 투옥된 후에도 당당한 태도를 보이니 조조가 불쾌히 여겨 최염에게 자결을 명하였다. 위지(魏志) 최염전(崔琰傳)에 “규룡의 수염에 똑바로 보는 품새는 마치 성난 바가 있는 것 같았다.[虯鬚直視 若有所瞋]”라고 최염의 외모를 표현한 말이 있다.

규수호미잉대상[虯鬚虎眉仍大顙]  규룡의 수염에 호랑이 같은 눈썹을 지니고 있고 아울러 이마가 넓고 큰 것을 말한다. 이기(李頎)의 시 송진장보(送陳章甫)에 “진후(陳侯)는 사람됨이 어찌 그리 넓고 큰가, 규룡의 수염 호랑이 눈썹에 넓은 이마로다. 뱃속에 만권의 책 쌓아 두었으니, 초야에서 고개 숙이고 있지는 못하리라.[陳侯立身何坦蕩 虯鬚虎眉仍大顙 腹中貯書一萬卷 不肯低頭在草莽]”라는 구절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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