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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시[棘寺]~극시유정[克施有政]~극신[劇辛]~극신[棘薪]~극신[極辰]


극시[棘寺]  극시는 형법(刑法)을 맡은 관아, 즉 대리시(大理寺)의 이칭인데, 송(宋) 나라 때 왕우칭(王禹偁)이 지은 대루원기(待漏院記)의 끝부분에서 ‘극시의 낮은 관리 왕우칭[棘寺小吏王禹偁]’이라고 보인다.

극시[棘寺]  대리시(大理寺)의 별칭으로,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관서(官署)이다. 조선조 때 의금부(義禁府)를 말한다.

극시유정[克施有政]  서경(書經) 군진(君陳)의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군진이여, 그대는 아름다운 덕으로 효도를 하고 공손하였소. 효성이 있어야만 형제에게 우애를 다하여 그것을 정사에까지 베풀 수 있는 것이요.[王若曰 君陳 惟爾令德 孝恭 惟孝友于兄弟 克施有政]”라고 하였다.

극시유정[克施有政]  어떤 사람이 공자(孔子)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정사(政事)를 하지 않는가?” 하니, 공자가 “서경(書經)에 효(孝)를 말하지 않았던가.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가 있어 이를 정사에 베푼다.[友于兄弟 克施有政] 하였으니, 이 또한 정사를 하는 것이다. 어찌 꼭 백성을 다스려야 정사를 하는 게 되리오.”라고 하였다. <論語 爲政>

극신[劇辛]  극신은 전국 시대 사람인데 어진 재주가 있었다. 연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의 말을 듣고 황금대(黃金臺)를 건축하고 겸손한 말과 후한 폐백으로 어진이를 초청하니 추연(鄒衍)은 제(齊) 나라에서 가고, 악의(樂毅)는 위(魏) 나라에서 가고, 극신은 조(趙) 나라에 들어가서 국정을 맡아보아 크게 강성하게 되어 마침내 제국(齊國)을 깨뜨렸다.

극신[劇辛]  본래 조(趙)나라 사람이다.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곽외(郭隗)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겸손한 말과 후한 폐백으로 어진 인재를 초청하니, 연(燕)나라로 가서 장군에 발탁되어 연 소왕(燕昭王)을 도왔다.

극신[棘薪]  시경(詩經) 개풍(凱風) 편에 “개풍 남쪽에서 와 저 가시나무 섶에 불고, 모씨(母氏) 성선(聖善)하니 자식들 좋은 사람이 없을 건가.[凱風自南, 吹彼棘薪. 母氏聖善, 我無令人.]”라 하였다. 棘木的薪柴.

극신[極辰]  장수(長壽)를 주관하는 별인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가리킨다. 전하여 앙모하는 이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극씨[郄氏]  후한 때 사람 극순(郄巡)으로 화제(和帝) 때 경방(京房)의 역학을 배우고 도참(圖讖)의 학에도 정통했다.

극씨유거원지난[郤氏有車轅之難]  극씨(郤氏) 집안 사람들에게 거원(車轅)의 환란이 있었음. <晉語 九 知伯國諫知襄子> 극주(郤犨)와 장어교(長魚蟜)가 전답을 두고 다투었는데, 극주(郤犨)가 장어교(長魚蟜)를 체포하여 수갑을 채우고, 그의 부모와 처자식까지 한 대의 수레 끌채에다가 함께 묶어 둔 일이 있었다. 나중에 장어교(長魚蟜)가 여공(厲公)의 총애를 입게 되자 소위 삼극(三郤)으로 지칭되던 당시 극씨 집안의 사람 극지(郤至)・극주(郤犨)・극기(郤錡) 등을 일거에 멸망시킨 일을 이른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四) 장어교협란중행장(長魚蟜脅欒中行章)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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