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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세성[金馬歲星]~금마옥당[金馬玉堂]~금마촉신[金馬蜀神]


금마산[金馬山]  전라북도 익산(益山)에 있다. 기자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패하여 남쪽으로 내려가 금마산에 자리 잡고 스스로 마한왕(馬韓王)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가 금마산에서 나라를 열었다고 하였다.

금마세성[金馬歲星]  임금의 뛰어난 시종신(侍從臣)이 될 자질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금마문(金馬門)은 한(漢) 나라 궁문의 이름으로, 동방삭(東方朔)・주보언(主父偃)・엄안(嚴安) 등 문인들이 황제의 조서를 기다리던 곳인데, 뒤에는 조정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세성(歲星)은 목성(木星)의 별칭으로, 한 무제(漢武帝)의 시종신이었던 동방삭이 원래 세성으로서 18년 동안이나 황제의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금마옥당[金馬玉堂]  한(漢)나라 때 금마문(金馬門) 옥당전(玉堂殿)은 문학을 하는 선비가 출사(出仕)하는 관아(官衙)로 후세에 한림원(翰林院)을 금마옥당이라 하였다.

금마옥당[金馬玉堂]  금마(金馬)는 한(漢)나라 궁문의 이름으로 학사(學士)들이 조명(詔命)을 기다리던 곳이다. 옥당은 한대의 궁전 이름. 한서(漢書) 양웅전(楊雄傳)에 “금마문(金馬門)을 거쳐서 옥당(玉堂)으로 올라간다.[歷金門上玉堂]”고 하였다.

금마옥당[金馬玉堂]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로 한(漢)나라 때에 학사들을 초대하였던 곳이었는데, 뒤에는 인하여 한림원이나 한림학사를 지칭하는 데 쓰였다.

금마옥당[金馬玉堂]  원래 한(漢) 나라 때 글 잘짓는 신하들이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던 궁중의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를 가리키는데, 후대에는 한림원(翰林院)의 학사(學士)를 가리키게 되었다.

금마은대[金馬銀臺]  금마는 금마문으로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 문 앞에 동마(銅馬)가 있어서 금마문으로 불리웠다. 문학하는 선비들이 출입하는 곳이었다. 조선 시대의 한림원이다. 은대는 조선 시대 승정원(承政院)이다.

금마촉신[金馬蜀神]  촉 땅 익주(益州)에 금마(金馬)와 벽계(碧溪)의 신(神)이 있는데, 제사를 지내 그들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방사(方士)의 말을 듣고, 한 선제(漢宣帝)가 간의대부(諫議大夫) 왕포(王褒)를 그곳에 사신으로 보낸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下 王褒傳, 卷25下 郊祀志>

금마태창[金馬太倉]  금마는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인 금마문(金馬門)이다. 문 앞에 구리로 만든 말이 있으므로 이렇게 부르며,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문학의 선비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 태창은 옛날 수도에 있는 큰 곡식 창고이다. 즉 조정에 벼슬하여 녹봉을 받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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