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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각[麒麟閣]~기린굴[麒麟窟]~기린대[麒麟臺]


기린각[麒麟閣]  기린각은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지은 누각으로, 선제(宣帝) 때 이곳에 공신(功臣) 11명의 화상(畫像)을 안치하였다. 후한 명제(明帝)는 영평(永平) 3년에 등우(鄧禹)를 위시한 중흥 공신(中興功臣) 28명의 초상화를 남궁(南宮) 운대(雲臺)에 안치하니 별자리 28수에 해당시킨 것이다.

기린각[麒麟閣]  기린각은 한(漢)나라 전각(殿閣)의 이름으로 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려 놓은 곳인데, 미앙궁(未央宮) 내에 있다. 미앙궁은 한 무제(漢武帝)가 건축하였는데, 일설에는 소하(蕭何)가 건축하였다고도 한다. 한 선제(漢宣帝) 감로(甘露) 3년에 곽광(霍光), 장안세(張安世), 한증(韓增), 조충국(趙充國), 위상(魏相), 병길(丙吉), 두연년(杜延年), 유덕(劉德), 양구하(梁丘賀), 소망지(蕭望之), 소무(蘇武) 등 공신(功臣) 11명의 초상화를 기린각에다 그려 놓았다. <漢書 卷54 蘇建傳>

기린각[麒麟閣]  한 무제(漢武帝)가 기린을 잡았을 때 이 누각을 만들고 그 형상을 누각에 그렸기 때문에 ‘기린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한 선제(漢宣帝) 감로(甘露) 3년(기원전 51)에 곽광(霍光) 등 공신 11명의 초상을 기린각에 그려 그 공적을 기렸다. <漢書 卷54 蘇武傳>

기린굴[麒麟窟]  영명사(永明寺)는 평양 금수산에 있던 절이고, 기린굴은 영명사 경내에 있던 굴인데,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이 일찍이 대동강 가의 부벽루 아래 기린굴에서 기린마(麒麟馬)를 길러 이 말을 타고 기린굴로부터 조천석(朝天石)으로 나가서 하늘에 올라가 조회했다는 전설이 있다.

기린굴[麒麟窟]  평양(平壤) 대동강 가의 부벽루(浮碧樓) 아래 기린굴(麒麟窟)이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東明王)이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하며, 또 조천석(朝天石)이 있는데 이는 동명왕이 여기서 말을 타고 하늘에 조회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 때 이색(李穡)의 부벽루시에 의하면 “어제 영명사에 들렀다가 잠깐 부벽루에 올랐노라. 빈 성엔 한 조각달이요, 늙은 돌엔 천추의 구름이로세. 기린말이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이 어느 곳에 노니는고. 길이 휘파람 불며 바람부는 언덕에 서니, 산은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 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라 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五十一 平壤府>

기린대[麒麟臺]  기린각(麒麟閣)을 말한다. 기린각은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재상인 소하(蕭何)가 지었는데, 궁중의 비서(秘書)를 소장하는 곳이다. 한나라 선제(宣帝) 감로(甘露) 3년에 흉노(匈奴)의 선우(單于)가 입조(入朝)하자, 황제가 공신들을 추억하여 중흥공신(中興功臣) 11명의 초상을 기린각에 그렸다. 훗날엔 공신각의 뜻으로 쓰인다. <漢書 卷54 蘇武傳>

기린명류방[麒麟名流芳]  한 선제(漢宣帝)때에 공신(功臣)들의 상(像)을 그려서 기린각에 걸었으므로, 전하여 공신에 책록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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