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명원[洛陽名園]~낙양방설[洛陽訪雪]~낙양복건[洛陽福建]

낙양두견[洛陽杜鵑]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낙양(洛陽)에 거주할 적에 한번은 손과 함께 달밤에 산보를 하였는데, 천진교 위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고는 자못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예전에는 낙양에 두견새가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두견새가 온 것으로 보아, 앞으로 몇 년 안 가서 임금이 남쪽 사람을 재상(宰相)으로 등용하면 따라서 남쪽 사람을 많이 끌어들여 오로지 변경(變更)만을 일삼게 되리니, 천하가 이때부터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천하가 다스려지려면 지기(地氣)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장차 어지러워지려면 지기가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지금 남방의 지기가 이른 것인데, 조류가 가장 먼저 지기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邵氏聞見前錄 卷19>

낙양맥[洛陽陌]  악부(樂府)의 횡취곡사(橫吹曲辭) 가운데 하나이다. 이백(李白)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맥(陌)은 동서로 뻗은 거리를 말한다.

낙양명원[洛陽名園]  송(宋) 나라 사람 이격비(李格非)가 낙양명원기(洛陽名園記)라는 책을 지었는데, 그것은 오대(五代)의 전란이 있기 이전 번화한 낙양에서 유명한 정원(庭園)들을 기록한 글이다.

낙양민중[洛陽閩中]  낙양(洛陽)은 정자(程子), 민중(閩中)은 주자(朱子)가 살던 곳이다.

낙양방설[洛陽訪雪]  후한(後漢)의 명상(名相) 원안(袁安)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한번은 낙양에 큰 눈이 와서 낙양영(洛陽令)이 민가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서 눈을 치우고 걸식을 하는데, 원안만 유독 눈도 치우지 않은 채 방 안에 반듯이 드러누워 있으므로, 사람을 시켜 이유를 묻자 원안이 말하기를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는 때에 사람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大雪人皆餓 不宜干人]”라고 하므로, 낙양 영이 그를 어질게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전하여 곤궁한 처지에 절조를 굳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낙양복건[洛陽福建]  정주(程朱)의 이학(理學), 즉 성리학(性理學)을 가리킨다. 북송(北宋)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는 낙양(洛陽) 사람이고, 남송(南宋)의 주희(朱熹)는 복건(福建)에 살며 강학하였다. 염락관민(濂洛關閩)이라고도 한다.

낙양복건[洛陽福建]  정주학(程朱學)을 말한다. 정자(程子)는 낙양(洛陽)에서 살고 주자(朱子)는 복건(福建)에서 살며 강학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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