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남관마부전[藍關馬不前]~남관설옹[藍關雪擁]~남관수[南冠囚]


남관객마집[藍關客馬縶]  한유(韓愈)가 좌천되어 지방으로 가다가 남전관에 이르러 지은 시에 “구름 가린 진령에 집은 어디 있는가? 남전관(藍田關)에 눈이 쌓여 말이 길을 멎어라.[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하였다.

남관고장[南館高嶂]  고장(高嶂)은 원가갈(袁家渴) 우측 소수(瀟水) 서쪽의 절벽이고, 남관(南館)은 그 위에 있는 건물이다. 유종원(柳宗元)의 영주팔기(永州八記)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인 원가갈기(袁家渴記: 원가갈을 유람한 기문)에 “원가갈(袁家渴)은 위로는 남관(南館)이 있는 높은 산에 닿아 있고, 아래로는 백가뢰(百家瀨)에 닿아 있다. 이 원가갈에는 여러 개의 모래섬과 작은 개울, 그리고 맑은 못과 얕은 땅이 서로 얽혀 굽이진 시냇물 위에 깔려 있다. 잔잔한 못물은 짙은 검은색을 띠었고, 물 흐름이 빠른 곳은 마치 끓어오르는 것처럼 흰 거품이 일어난다.[渴上與南館高嶂合, 下與百家瀨合. 其中重洲小溪澄潭淺渚間厠曲折, 平者深黑, 峻者沸白.]”라고 한 데서 보인다. 원가갈(袁家渴)은 영릉현(零陵縣) 조양암(朝陽巖)에서 동쪽으로 5리 거리의 소수(瀟水) 안에 있는 하나의 물굽이로, 지금의 이름은 사구만(沙溝灣)이다.

남관마[藍關馬]  한유(韓愈)의 ‘좌천되어 가는 도중에 남관에 이르러 질손 상에게 주다[左遷至南關示姪孫湘]’라는 시에 “구름이 진령에 비껴 있으니 집은 어디쯤 있는가? 눈이 남관을 싸고 있으니 말이 나아가지 않는구나.[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10> 남관은 진(秦)나라의 남전관(藍田關)을 가리키는데,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동남쪽에 있었다.

남관마부전[藍關馬不前]  남관(藍關)은 곧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의 동남쪽에 있던 남전관(藍田關)을 가리킨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헌종(憲宗)의 진노를 사서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폄척되어 가던 도중, 눈을 맞으며 따라오는 질손(姪孫) 한상(韓湘)을 만나서 그에게 준 ‘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姪孫湘) 시에 “아침에 표문 한 장 구중궁궐에 올렸다가, 저녁에 조주로 폄척되니 길은 팔천 리로다. 성명을 위해 나쁜 일을 제거하려 하거니, 어찌 노쇠한 몸 남은 생을 아끼려 할쏜가. 구름은 진령에 비꼈어라 집이 어디 있는가? 눈은 남관에 가득 쌓여 말이 가지를 못하네. 알괘라 네 멀리 온 게 응당 뜻이 있을 터이니, 장기 어린 강변에서 내 뼈를 잘 거두어다오.[一封朝奏九重天, 夕貶潮州路八千. 欲爲聖明除弊事, 肯將衰朽惜殘年? 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知汝遠來應有意, 好收吾骨瘴江邊.]”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10>

남관북교[南冠北窖]  남쪽과 북쪽으로 몸이 묶여 사로잡혀 가는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초(楚) 나라 악공인 종의(鍾儀)가 진(晉) 나라에 잡혀가서도 계속 남관(南冠)을 쓰고 있었다는 고사와 한(漢) 나라 소무(蘇武)가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억류된 채 땅속 움집[窖]에 갇혀 있었던 고사가 있다. <左傳 成公 9年・漢書 卷54 蘇建傳>

남관설[藍關雪]  당(唐) 나라 한유(韓愈)가 불골표(佛骨表)를 드리고 멀리 조주(潮州) 8천 리를 귀양가서 지은 시의 한 연(聯)에 “구름이 진령(秦嶺)에 비꼈는데 집은 어디에 있는가. 눈이 남관(藍關)에 쌓였는데 말도 걸음을 못 걷는다[橫泰嶺家佈佐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하였다.

남관설옹[藍關雪擁]  남관은 남전관(藍田關)의 준말이다. 당(唐) 나라 한유(韓愈)의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서 질손 상에게 보여 준 시[左遷至藍關示姪孫湘詩]’에 “…… 구름은 진령을 가로질러라 집은 어디 있는가, 눈은 남관을 가로막아 말이 가지를 못하네. …… [雪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十>

남관수[南冠囚]  초(楚)나라 관을 쓴 죄수(罪囚).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죄수(罪囚) 종의(鍾儀)를 가리킨다. 전하여 타향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절개를 잃지 않는 수인(囚人)을 지칭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나라의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일찍이 정인(鄭人)에 의해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갇혀 있을 때, 진 혜공(晉惠公)이 군부(軍府)를 시찰하다가 그를 보고는 유사(有司)에게 “남관을 쓰고 갇혀 있는 자가 누구냐?[南冠而縶者誰也?]”리고 묻자, 유사가 “정인이 바쳐 온 초나라의 죄수입니다.[鄭人所獻楚囚也.]”라고 하므로, 혜공이 그의 결박을 풀어 주게 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그의 집안이 악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에게 거문고를 주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자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였으며[使與之琴 操南音], 혜공이 범문자(范文子)의 말에 따라 그를 예우하여 고국으로 돌려보내 두 나라의 화목을 도모했다는 기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9년 조에 나온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