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南冠] 남관(南冠)은 죄수(罪囚)를 가리킨다. 춘추(春秋) 성공(成公) 9년에 “진후(晉侯)가 군대를 시찰하다가 종의(鍾儀)를 보고는 그에 대해 ‘남쪽 나라의 관(冠)을 쓰고 줄에 묶여 있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묻자, 담당 관리가 ‘정나라 사람이 바친 초나라 죄수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晉侯觀于軍府 見鍾儀問之曰: 南冠而縶者誰也? 有司對曰: 鄭人所獻楚囚也]”는 기록이 보인다. 종의(鍾儀)가 남방 초나라 사람으로 초나라 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남관(南冠)이라 한 것이다. 후세에 이 말은 죄수를 대신하는 말로 쓰였다.
남관[南冠]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을 가리킨다. 남관(南冠)은 남방의 초(楚)나라 사람들이 쓰던 관(冠)으로, 춘추시대 때 초나라 사람 종의(鍾儀)가 진(晉)나라에 포로로 잡혀 갇혀 있으면서도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여 초나라의 관(冠)을 썼던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좌전(左傳) 성공 9년(成公九年)에 “진후가 군부(軍府)를 시찰하던 중에 종의를 보고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붙잡혀 있는 사람 중에 남방의 관을 쓴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가 정나라 사람이 바친 초나라의 포로라고 말했다.[晉侯觀於軍府, 見鍾儀問之曰: 南冠而縶者誰也? 有司對曰: 鄭人所獻楚囚也.]”라고 보인다. 진나라 임금이 그로 하여금 초나라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자 종의는 고향을 그리면서 자기 나라 토속의 곡조를 연주하였고, 진나라 임금이 그 음악을 다 듣고는 슬퍼하면서 종의를 석방하게 하였다 한다.
남관[南冠] 남초(南楚) 사람의 관이란 뜻으로,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죄수(罪囚) 종의(鍾儀)를 가리킨다. 전하여 타향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절개를 잃지 않는 수인(囚人)을 지칭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나라의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일찍이 정인(鄭人)에 의해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갇혀 있을 때, 진 혜공(晉惠公)이 군부(軍府)를 시찰하다가 그를 보고는 유사(有司)에게 “남관을 쓰고 갇혀 있는 자가 누구냐?[南冠而縶者誰也?]”리고 묻자, 유사가 “정인이 바쳐 온 초나라의 죄수입니다.[鄭人所獻楚囚也.]”라고 하므로, 혜공이 그의 결박을 풀어 주게 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그의 집안이 악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에게 거문고를 주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자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였으며[使與之琴 操南音], 혜공이 범문자(范文子)의 말에 따라 그를 예우하여 고국으로 돌려보내 두 나라의 화목을 도모했다는 기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9년 조에 나온다.
남관[南冠] 초(楚)나라 사람들이 쓰는 관(冠). 춘추시대 때 초나라 사람들이 쓰던 것이라 하여 초관(楚冠)이라고도 한다. 어사(御使) 또는 사절(使節) 및 집법자(執法者)가 머리에 쓰는 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임금과 대부(大夫)는 제멋대로 다른 나라 복장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예(禮)이다.
남관[南關] 마천령(摩天嶺) 남쪽 지방으로 함경남도를 이르는데 관남(關南)이라고도 한다.
남관[藍關] 남전관(藍田關)으로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에 있다. 남전(藍田)은 고대로부터 진초대로(秦楚大路)를 통해 동남쪽 여러 지방으로 가는 교통 요로 중의 하나였다.
남관[藍關] 남관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에 진령(秦嶺)에 있는 관소(關所)로 남전관(藍田關)을 말한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조주(潮州)로 귀양을 가다가 지은 시인 ‘좌천되어 가다가 남관에 이르러 질손 상에게 보여 주다[左遷至藍關示姪孫湘]’에서 “구름이 진령에 비껴 있으니 집은 어디쯤에 있을까? 눈이 남관을 안고 있어 말이 앞으로 가지 못하네.[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10>
남관[藍關] 진(秦)나라의 남전관(藍田關)의 준말로,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동남쪽에 있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유(韓愈)의 조카 한상(韓湘)이 술법으로 모란을 피웠는데, 그 꽃잎에 작은 금자(金字)로 “구름은 진령에 비꼈는데 집은 어드메뇨. 눈이 남관을 둘러 말이 가지 못하누나.[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적혀 있었다. 그 뒤 한유가 좌천되어 조주(潮州)로 가다가 남관에 이르러 큰 눈을 만나고서 그 뜻을 깨달았다. 그때 홀연 그곳으로 찾아온 한상에게 역시 시를 읊어 “구름은 진령에 비꼈는데 집은 어디쯤인가? 눈이 남관을 둘러 말이 가지 못하누나.[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 하고 “네가 멀리서 온 것은 뜻한 바 있어서임을 아노니, 장강 가에서 나의 유골을 거두어 주게.[知汝遠來應有意, 好收吾骨瘴江邊.]”라고 하였다. <韓仙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