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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음[南音]~남의[南疑]~남의[攬衣]


남음[南音]  여씨춘추(呂氏春秋) 음초(音初)에 “우(禹) 임금이 남토(南土)를 순행하는데 도산씨(塗山氏)의 딸이 그 누이를 시켜 두 임금을 도산의 남쪽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기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 노래에, ‘사람을 기다린다.[候人兮椅]’고 하였는데, 실로 남음의 시작이다.”라고 하였고, 주에 “남음은 남방 국풍(國風)의 소리다.”라고 하였다.

남음[南音]  남음은 남방인 초(楚)나라의 음악으로, 전하여 고향을 그리워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일찍이 정인(鄭人)에 의해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갇혀 있을 때, 진 혜공(晉惠公)이 군부(軍府)를 시찰하다가 종의가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남쪽 나라 관을 쓰고 잡혀 있는 저 자는 누구인가?[南冠而縶者誰也]”라고 묻자, 유사(有司)가 “정나라 사람이 바친 초나라 포로입니다.[鄭人所獻楚囚也]”라고 대답하니, 혜공이 그의 결박을 풀어 주게 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그의 집안이 악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에게 거문고를 주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자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였으며[使與之琴 操南音], 혜공이 범문자(范文子)의 말에 따라 그를 예우하여 고국으로 돌려보내 두 나라의 화목을 도모했다는 기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9년 조에 나온다.

남음[南音]  남음은 남쪽 초(楚)나라의 음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하여 고향을 그리워함을 비유한다. 초나라의 종의(鍾儀)가 진(晉)나라에 사로잡혀 있을 때 진후(晉侯)가 그에게 거문고를 주니, 자기 고향인 초나라의 음악을 탔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9년에 “진후(晉侯)가 한 죄수를 보고 ‘저 초 나라의 관(冠)을 쓰고 결박되어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묻자 유사(有司)가 ‘정(鄭) 나라에서 바쳐 온 초(楚) 나라 죄수입니다.’라고 하였다. 진후가 그 결박을 풀어 주게 하고 그 출신을 묻자 ‘대대로 초 나라의 악관(樂官)이었습니다.’라고 하였고 풍류를 아느냐고 묻자, ‘선부(先父)의 직업인데, 어찌 감히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거문고를 주며 한번 뜯어보라고 하였는데, 그는 끝내 남쪽 음률을 연주하였다.”라고 하였다.

남의[南疑]  남쪽의 구의산(九疑山)이라는 말이다. 구의산(九疑山)은 호남성(湖南省) 영릉현(零陵縣)에 있는데 순(舜)임금이 순행(巡行)하다가 이곳에서 죽어 장사지냈으므로, 남의(南疑)라 하면 곧 제왕(帝王)의 죽음을 의미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남의[攬衣]  어명을 받고 글을 짓기 위해 옷깃을 잡고 일어서는 것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시 ‘한 달이 넘도록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臥病逾月……]’에 “싸락눈이 드문드문 옥당에 떨어질 제, 사두가 밤중에 하달되어 바삐 옷깃을 잡고 일어선다.[微霰疎疎點玉堂 詞頭夜下攬衣忙]”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30 臥病逾月 請郡不許 復直玉堂 十一月一日鎖院 是日苦寒 詔賜宮燭法酒 書呈同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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