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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위형제[魯衛兄弟]~노유군자[魯有君子]~노육시어[路六侍御]

노위형제[魯衛兄弟]  노(魯)에 봉해진 주공(周公)과 위(衛)에 봉해진 강숙(康叔) 형제를 말하는데, 강숙은 위에 봉해진 뒤 항시 형인 주공의 정사를 본받아 국정(國政)도 마치 형제같이 잘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노와 위의 정사는 형제간이로다.[魯衛之政 兄弟也]”라고 한 것은, 쇠하고 혼란한 당시 정사도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에 공자가 탄식하여 한 말이다.

노위형제지국[魯衛兄弟之國]  노(魯)나라의 시조인 주공(周公) 단(旦)과 위(衛)나라의 시조인 강숙(康叔) 봉(封)은 문왕(文王)의 아들로 형제간(兄弟間)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강숙은 위에 봉해진 뒤 항시 형인 주공의 정사를 본받아 국정(國政)도 마치 형제같이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노와 위의 정사는 형제처럼 한다.[魯衛之政 兄弟也]”라고 하였다.

노유[魯儒]  많은 경우 공자(孔子)를 가리키지만, 춘추시대 때 노(魯)나라였던 지역의 유생(儒生)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노유개[魯有開]  송(宋)나라 사람으로 자는 원한(元翰)이다. 벼슬은 확산지현(確山知縣)・금주지현(金州知縣)・위주지현(衛州知縣) 등을 거쳐 중대부(中大夫)에 이르렀다. 상평(常平)의 전속(錢粟)을 내어 수재민(水災民)을 구제한 일이 있고, 기주(冀州)의 제방을 증축하여 수환을 예방한 일로 인하여 선부랑중(膳部郞中)으로 특승(特陞)된 일이 있다. <宋史 卷426>

노유군자[魯有君子]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자천(子賤)을 평하였다. ‘군자답구나,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덕(德)을 취했겠는가.’[子謂子賤: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라는 말이 있다.

노유성패[魯有星孛]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7년에 보인다. 성패(星孛)는 혜성으로, 난신(亂臣)들이 찬탈이나 살육할 표상(表象)이다.

노유유막경환구[魯濡帷幕景桓救]  노나라에서 장막 적셔 경환이 불을 끔. 경환(景桓)은 자복경백(子服景伯)과 계환자(季桓子)의 합칭이다. 노(魯)나라 애공(哀公) 3년 여름 5월에 사탁(司鐸)에 화재가 났다. 불길이 대궐을 넘어 환공(桓公)과 희공(僖公)의 종묘에까지 번졌다. 불을 끄러 온 사람들이 궁실의 창고에 불이 옮겨붙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자복경백이 재인(宰人)에게 명하여 어서(御書)와 예서(禮書)부터 꺼내도록 하였다. 이어 모든 관원들에게 관을 갖추고 창고를 신중히 지키고 있으면서, 엄숙히 명에 응하고 위장이나 천막을 물에 적셔두어 불기운이 가는 곳에 공옥(公屋)을 덮으라고 명하여 화재를 막았다. 뒤이어 계환자가 와서 함께 화재를 진압하였는데, 사람을 중히 여겨 불을 끄는 자가 상해를 입으면 즉시 멈추도록 하였다. <春秋左氏傳 哀公 3年>

노육시어[路六侍御]  어려서부터 두보(杜甫)와 친교를 맺고 지낸 사람이겠지만 누군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시어(侍御)는 관직이고 노(路)는 성이며 육(六)은 형제 내 순서를 나타내는 배항(排行)이다. 두보(杜甫)의 시 송노육시어입조(送路六侍御入朝)에 “어린 시절 친하여서 사십 년이 흘렀는데, 그간에 소식 끊어져 둘 다 망망하였다네.[童稚情親四十年 中間消息兩茫然]”라고 하였다. <杜詩詳註 卷12>

노윤[盧綸]  자는 윤언(允言). 중당(中唐) 때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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