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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왕씨[魯齋王氏]~노재포씨[魯齋鮑氏]~노재허씨[魯齋許氏]


노재눌재[魯齋訥齋]  노재는 주희의 재전제자인 왕백(王柏)을 가리키며 눌재는 주희의 제자인 조사연(趙師淵)을 가리킨다. 왕박이 1265년에 자치통감강목을 간행하면서 쓴 후서에 의하면, 자치통감강목은 주희가 전체를 모두 편찬한 것이 아니라 강(綱) 아래의 목(目)은 제자인 조사연에게 맡겨서 편찬한 것임을 조사연의 문집인 눌재집을 통해 밝히고 있다. <資治通鑑綱目 卷首 王栢凡例後語>

노재도[魯齋圖]  노재는 남송의 학자 왕백(王栢)을 가리키며, 노재도는 주염계의 태극도설 주석서에 해당하는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를 가리킨다.

노재왕씨[魯齋王氏]  송(宋)나라 사람 왕백(王柏)으로, 자는 회지(會之)・백회(伯會), 호는 노재・장소(長嘯),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절강성(浙江省) 금화(金華) 사람이다. 황간(黃榦)의 제자인 하기(何基)를 사사하였다. 왕백은 주자의 격물치지장을 수용하지 않고 경문(經文)의 제2절・제3절과 청송장(聽訟章)을 합해 격물치지를 해석한 전문으로 보았다. 저술로 시의(詩疑)・서의(書疑)・독역기(讀易記) 등이 있다.

노재전서[魯齋全書]  원(元)나라 초기의 학자 허형(許衡)의 저서이다. 그의 자는 중평(仲平)이며, 호가 노재이다. 세조(世祖) 때 벼슬이 국자좨주(國子祭酒)에 이르렀다. 정주학(程朱學)에 조예가 깊었고 오징(吳澄)과 함께 원대(元代) 이대학자(二大學者)로 꼽힌다. <元史 卷158 許衡列傳>

노재포씨[魯齋鮑氏]  포운룡(鮑雲龍)을 말한다. 자는 경상(景翔), 호는 노재로 송말원초의 경학가이다. 1258년에 진사가 되었으나, 원나라가 건국되자 은거하여 학문과 강학에 힘썼으며, 주역(周易)을 정밀히 연구하였다. 저술로 천원발미(天原發微) 등이 있다.

노재허씨[魯齋許氏]  원(元)나라 학자인 허형(許衡)을 가리킨다. 노재는 그의 호이고 자는 중평(仲平), 하내(河內) 사람이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여 여러 차례 불러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원나라 세조가 그의 제자 왕재(王梓)・유계위(劉季偉)・한사영(韓思永) 등 12인을 불러 국자감(國子監)의 재장(齋長)으로 삼았다. 조복(趙復, 1215~1306)과 함께 노재학파(魯齋學派)를 만들어 북방에 정주학을 일으켰으며,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가 과시(科試)에 채택되게 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저서로는 독역사언(讀易私言)・노재심법(魯齋心法)・허노재집(許魯齋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재허씨[魯齋許氏]  원나라 하내(河內) 출신. 이름은 형(衡). 자는 중평(仲平). 호는 노재(魯齋). 정주학자(程朱學者)로 노재선생(魯齋先生)이라고 불린다. 시호는 문정(文正). 경학(經學), 자사(子史), 예악(禮樂), 명물(名物), 성력(星曆), 병형(兵刑), 식화(食貨), 수리(水利)에 널리 통달했다. 특히 정주(程朱)의 학을 받들었다. 유인(劉因)과 함께 원나라의 두 대가(大家)라고 불렸다. 세조(世祖) 때 벼슬에 나아가 국자좨주(國子祭酒), 중서좌승(中書左丞)을 지냈다. 아합마특(阿哈馬特)의 천권(擅權)을 논하고 관직을 떠났다. 가르치기를 잘하여 따라서 배우는 사람이 많았다. 저서에 독역사언(讀易私言), 노재심법(魯齋心法), 노재유서(魯齋遺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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