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蘆荻] 갈대와 물억새. 둘 다 강변에서 자란다.
노적[孥籍] 수노적산(收孥籍産)의 준말로, 중죄(重罪)를 지었을 경우 본인을 극형(極刑)에 처하고 나서 그 처자(妻子)까지 연좌시켜 관(官)의 노비(奴婢)로 만들고, 또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노적봉[露積峯] 영양군 수비면 계리의 적싯골 입구에 있는 산으로,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노적봉[露積峯] 백운대 남쪽 건너편에 있는 암벽으로 된 봉우리이다. 우뚝 솟은 모양이 마치 노적가리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적지전[孥籍之典] 노적(孥籍)의 형전. 중죄를 지었을 경우 본인을 극형에 처한 뒤에 그 처자식까지 연좌시켜 같은 형률을 적용하거나 노비로 삼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이른다.
노전[露電] 이슬과 번개. 순식간에 사라짐을 의미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 “일체유위의 법칙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나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노전[魯殿] 노전은 영광전(靈光殿)의 이칭이다.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아들 노 공왕(魯恭王)이 세운 궁전으로, 춘추 시대 노(魯)나라 땅이던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었다. 많은 궁전이 흐르는 세월 속에 모두 없어지고 영광전만 홀로 우뚝이 남았다. 전하여 옛 자취가 다 사라진 가운데 홀로 남아 우러르는 대상을 비유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노전[魯殿] 영광전(靈光殿)을 말하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원로 석학(碩學)이나 유현(儒賢)을 비유한다.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아들 노공왕(魯恭王)이 세운 궁전으로 산동(山東) 곡부현(曲阜縣) 동쪽에 있었는데, 한나라 중기에 도적떼에 의하여 수도 장안(長安)의 미앙궁(未央宮)과 건장궁(建章宮) 등은 다 불탔으나 영광전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후한(後漢)의 왕연수(王延壽)가 지은 노영광전부 서(魯靈光殿賦序)에 “서경(西京)의 미앙궁과 건장궁 등 궁전이 모두 파괴되어 허물어졌는데도, 영광전만은 우뚝 홀로 서 있었다.[西京未央建章之殿 皆見隳壞 而靈光巋然獨存]”라고 하였다.
노전[虜箭] 고대 북방 소수민족이 군대에서 화살을 통해 명령을 전하던 방식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 투증가서개부한(投贈哥舒開府翰)에 “청해에는 전하는 화살 호령이 없고, 천산에는 일찌감치 활을 걸어 두었다네.[青海無傳箭, 天山早掛弓.]”라는 구절이 있다.
노전[盧前] 노조린(盧照隣)의 앞이란 뜻으로, 재주가 부족하면서 명성이 남의 앞에 있음을 뜻한다.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낙빈왕(駱賓王)으로 병칭되는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인 양형이 “나는 노조린의 앞에 있는 것이 부끄럽고 왕발의 뒤에 있는 것이 수치스럽다.[吾愧在盧前, 耻居王後.]”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舊唐書 卷201 文苑傳上 楊炯>
노전괴[盧前愧] 헛되이 명예를 입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 나라 때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은 모두 시명(詩名)이 높아 사걸(四傑)로 일컬어졌는데, 양형은 노조린을 가장 높이 여겨 “나는 노조린의 앞에 있기는 송구스럽고, 왕발의 뒤에 있기는 수치스럽다.[吾愧在盧前, 耻居王後.]”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唐書 卷二百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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