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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십편[綠芽十片]~녹야[綠野]~녹야당[綠野堂]~녹야발제[鹿野跋提]


녹아십편[綠芽十片]  당(唐)대의 제다(製茶)는 증(蒸), 도(搗), 박(拍), 홍(烘)의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데 둥근 떡[團餠단병] 모양을 하고 있어서 병차(餠茶) 혹은 편차(片茶)라고 하였다. 녹아십편(綠芽十片)은 단병차(團餠茶)를 열 덩어리를 이르는 것이다.

녹야[綠野]  녹야(綠野)는 녹야당(綠野堂)의 준말로 만년에 높은 벼슬자리에서 물러 나와 한가로이 노니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다. 당나라의 재상 배도(裴度)가 만년에 낙양(洛陽)에 은퇴하여 녹야당을 지어 놓고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밤낮으로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세상일을 묻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73 裴度傳>

녹야[綠野]  은퇴한 재상의 별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唐) 나라 헌종(憲宗) 때의 재상 배도(裵度)가 만년에 환관이 발호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은퇴한 뒤 녹야당(綠野堂)이라는 별장을 짓고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과 풍류를 즐겼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裵度傳>

녹야당[綠野堂]  당(唐)나라 헌종(憲宗) 때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배도(裴度)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지내던 별장 이름이다. 전하여 고관으로 있다가 물러난 사람이 거처하는 당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배도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낙양(洛陽) 남쪽의 오교(午橋)에 꽃나무 만 그루를 심고서 그 중앙에 여름에 더위를 식힐 누대와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집을 지어 녹야당이라 이름을 붙이고는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 문인들과 모여 시주(詩酒)로 소일하였다. <新唐書 卷173 裴度列傳>

녹야당[綠野堂]  당 나라 배도(裴度)의 별장을 말한다. 배도는 당(唐) 나라 중기의 재상으로, 회서(淮西)를 토평(討平)한 공으로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그후 30여 년간 국정을 잡아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후에 환관이 권력을 천단(擅斷)하여 사기(士氣)가 떨어지자 드디어 동도(東都)에 녹야초당(綠野草堂)이라는 별장을 지어 명사들과 글과 술로 세월을 보내며 세상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舊唐書 卷170 裴度列傳>

녹야당[綠野堂]  당(唐)나라 배도(裵度)가 지은 별장이름이다. 그 옛터가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현(洛陽縣) 남쪽에 있다. 구당서(舊唐書) 배도전(裵度傳)에 “배도가 오교(午橋)에 별장을 건립했는데, 화목(花木) 1만 주를 심고 중간에 양대서관(凉臺署館)을 짓고는 녹야당이라고 이름했다.”라고 하였다.

녹야발제[鹿野跋提]  석가(釋迦)가 성도(成道) 후 인도(印度) 각지에서 설법한 45년 동안을 말한다. 35세에 대각(大覺)을 이룬 뒤에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비구를 상대로 사제(四諦)의 교설 등을 처음으로 베풀었으며, 80세에 이르러 발제하(跋提河)의 서쪽 언덕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입멸(入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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