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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석분음[當惜分陰]~당선작탄[螳蟬鵲彈]~당성[唐城]~당성배[堂姓輩]~당성인[唐城引]


당석분음[當惜分陰]  진(晉)나라의 도간(陶侃)이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대우는 성인인데도 촌음을 아꼈으니,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응당 푼음도 아껴야 할 것이다.[大禹聖人,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라고 한 말이 있다. 1푼은 1치의 10분의 1이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당선작탄[螳蟬鵲彈]  서로 잡아먹으려고 기회를 노린다는 것으로서,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까치는 사마귀를 노리고 사람은 까치를 노린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장주가 조릉(雕陵)의 율원(栗園)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서남쪽에서 날아오다가 장주의 이마를 부딪치고 지나가 밤나무 숲 속에 앉았다. 장주가 말하기를 ‘무슨 새가 저렇단 말인가. 방대한 날개를 가지고도 멀리 날지 못하고 큰 눈을 가지고도 사물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라 하고 빨리 달려가 새총을 가지고 와서 그 새의 동정을 엿보았다. 그때 한 마리 매미가 좋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자신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사마귀가 나뭇잎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먹이가 눈에 띄자 자신의 형체를 망각해 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 생긴 까치가 기회를 틈타고 이롭게 여기다가 이익에 탐닉되어 진성(眞性)을 잃어버렸다. 장주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말하기를 ‘아, 동물이 서로 해치는 것은 양쪽이 서로 불러들여 이익을 탐하는 소치이다.’라 하고 활을 버리고 달아났다.”라고 하였다.

당선종[唐宣宗]  당(唐)의 21대 왕 이침(李忱)이다.

당성[唐誠]  고려에 귀화한 중국인으로 밀양 당씨(密陽唐氏)의 시조이다. 원나라 말기 전란을 피하여 고려에 귀화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연리(掾吏), 사평순위부평사(司平巡衛府評事)를 지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전서(典書)를 거쳐 공안부윤(恭安府尹)으로 있다가 퇴임하였다.

당성[唐城]  당성은 경기도 남양(南陽)의 고구려 때 이름이다. 당릉(唐陵)이라고도 한다.

당성[當城]  현재 있는 이 곳의 성(城).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성(城). 일설에는 한대(漢代)에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서쪽 울현(蔚縣) 근방에 당성(當城)이라는 성이 있었다고 한다.

당성배[堂姓輩]  고조부가 같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당성인[唐城引]  당성은 남양(南陽)의 옛 이름이고, 인은 가곡(歌曲)의 이름이다. 이 노래는 남양 홍씨(南陽洪氏)가 동방(東方)에 건너온 이후 대대로 번창해진 내력을 읊조린 것이다. 남양 홍씨보(洪氏譜)에 의하면, 홍천하(洪天河)는 당(唐) 팔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에 귀화(歸化)했다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에 태자 태사(太子太師)가 되고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牧隱詩藁 卷15 當城引>

당세[當世]  권력을 잡다. 세상을 다스리다. 좌전(左傳) 소공칠년(昭公七年)에 “성인은 밝은 덕을 갖추고 있어서 만약 군주가 되지 못하면 후손 중에 반드시 달인이 나올 것이다.[聖人有明德者, 若不當世, 其後必有達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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